태양계 행성의 마지막 9번째 행성인 명왕성(冥王星·Pluto)이 행성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국제천문연맹(IAU)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세계 75개국 2500명의 천문학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총회에서 행성의 정의를 표결한 결과 명왕성을 '왜소행성(矮小行星·Dwarf planet)'으로 구분해 행성의 반열에서 제외시켰다.

1930년 발견된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됨으로써 행성은 기존 9개에서 8개로 줄어들게 됐다.

명왕성 왜 퇴출됐나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교수인 천문학자 마이클 브라운이 2003UB313(일명 제나)을 발견하면서 행성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브라운 교수는 제나가 명왕성보다 크며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어 명왕성이 행성이라면 제나도 당연히 행성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명왕성은 지름 2306km(달 지름의 3분의 2)이고,타원에 가까운 불규칙한 공전 궤도를 그리며,다른 행성과 달리 궤도면과 황도면의 경사각이 17도나 기울어져 있다. 이에 비해 제나는 지름이 2400km나 됐다.

브라운 교수의 이의 제기에 따라 행성의 정의에 대한 논란이 점점 커졌다. 미국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수정주의'학자들은 행성의 범위를 완화해 지름 800km 이상,지구 질량의 1만2000분의 1 이상,구형을 유지할 만한 중력을 가진 천체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자고 주장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외에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과 최근 발견한 제나,케레스,카론을 포함해 행성이 모두 12개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유럽학자 위주의 '원칙주의자'들은 이 주장에 반대했다. 이들은 행성의 기준이 너무 모호해 앞으로 발견할 수많은 천체들이 이 기준에 해당할 것이란 반론을 폈다. 적어도 행성은 자신의 구역 안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경우 해왕성의 공전구역에 놓여 있는 명왕성은 행성 자격을 잃게 돼 행성은 8개가 된다.

이처럼 태양계 행성의 수를 '12개'로 늘리자는 수정안과' 8개'를 지지하는 안이 격론을 거듭한 끝에 이번 총회에서 표결에 부쳐진 것이다. 학자들은 대부분 8개 안에 손을 들어줬다.

행성 후보였던 제나,케레스,카론과 명왕성은 왜소행성으로 분류되고,새 기준에 따라 태양계는 행성,왜소행성,혜성과 소행성 등 수천개의 '태양계 소형 천체들'이란 3등급으로 나뉘어지게 됐다.

미국 과학계의 위기감 고조

이번 IAU의 결정으로 미국 과학계는 충격에 빠졌다. 특히 올해 명왕성 탐사선을 출발시키는 등 그동안 세계 최고라고 자부해온 미국 과학의 위상에 흠집이 생길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기사에서 "명왕성 퇴출에 대해 합리성이 감성에 승리했다고들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큰 실망을 가져왔다"며 IAU의 결정을 비판했다. 이 신문은 오웬 깅그리치 하버드대 교수의 말을 인용,"IAU가 왜소행성은 행성이 아니라고 한다면 키 작은 사람은 사람이 아닌가"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뉴욕타임스도 과학면에서 "태양계 행성을 몇 개 더하는 것은 과학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고 하나 퇴출시키는 것은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인가"라며 의문을 표시했다. 1930년에 명왕성을 발견한 미국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1906~1997년)의 부인 파트리샤도 "나는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지만 심히 동요하고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올초 발사한 명왕성 탐사선 '뉴 호라이즌스'의 운명도 불투명하게 됐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현재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뉴 호라이즌스의 항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나오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뉴 호라이즌스는 2015년 7월14일 명왕성을 근접 비행할 예정이다.

명왕성 퇴출 후폭풍은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잃게 되자 당장 교과서를 비롯해 백과사전,시험 문제,각종 과학 기록 등을 모두 고쳐야 한다.

국내에서도 관련 교과서를 수정해야 하고 각종 지표나 자료도 손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심지어 과학관에 전시돼 있는 우주 천체도도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는 실정이다.

명왕성이라는 명칭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왜소행성으로 강등된 만큼 행성에 부여됐던 '-성(星)'을 떼내고 '명왕체' 등으로 이름을 고쳐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과학기술부 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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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왕성이란… 평균 밝기 15등급 '어두운 별'

 
명왕성은 태양으로부터 약 59억km 떨어진 평균 밝기 15등급의 희미한 별이다. 지름 50cm 이상의 망원경을 사용해야 겨우 보일까 말까 한 별이다. 지구의 10분의 1 크기이며 질량은 매우 작아 지구의 5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태양과의 거리가 먼 만큼 태양 둘레를 도는 공전 주기도 평균 248년 6개월에 달한다.

과학자들이 해왕성 발견 뒤 태양계를 도는 행성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계속 관측했는데,1930년 미국 과학자 클라이드 톰보에 의해 로웰천문대에서 사진 관측으로 발견됐다. 발견이 늦어진 것은 아주 희미한 별이며,공전주기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 톰보가 이 별을 발견하기 전에 이미 1914년 독일 쾨니히슈톨 천문대와 1919년 미국 윌슨산 천문대,1921년과 1927년 여키스 천문대에서 각각 일반 별(항성)로 관측되기도 했다.

이 행성이 예상 밖으로 어둡자 학자들은 그리스신화의 하데스(지하의 신)의 라틴명인 플루토(Pluto)로 이름을 붙였다. 이에 따라 동양에선 어두운(冥) 별이란 의미로 명왕성으로 불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