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증권 기사를 읽다 보면 영어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모멘텀' '어닝 시즌' '서머 랠리' '리레이팅'…. 한글 애용론자들 입장에서 보면 분통 터질 만한 일이다.
더구나 '모멘텀→계기' '어닝 시즌→실적 발표 기간' '서머 랠리→여름휴가철 주가 강세''리레이팅→재평가' 등 번역할 수 있는 우리말이 엄연히 있는 데도 굳이 원어를 그대로 쓰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데는 나름대로 변명 거리가 있다.
자본에 국적이 없어져 세계 주식시장이 한몸처럼 움직이는 상황이 되다 보니 번역 과정을 거칠 시간적 여유가 없어진 데다 일반 투자자들 사이에서 워낙 널리 쓰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블록딜도 그 중 하나다.
최근 기업들의 대규모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블록딜이 워낙 자주 일어나다 보니 기사에서도 블록딜이란 용어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
다음은 지난 6월26일자 한국경제신문 증권면에 실린 기사 일부분이다.
'채권단이 보유한 하이닉스 지분의 블록딜을 위한 채권단과 주간사들 간의 협상이 주말 마라톤 협상 끝에 25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에 따라 26일 개장 전에 국내외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한 블록딜이 이뤄질 예정이다.'
하이닉스처럼 블록딜은 굳이 M&A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기존 대주주가 지분을 파는 과정에서 자주 동원된다.
하이트맥주의 2대 주주인 칼스버그가 지난 6월 중순 보유 주식 252만여주를 기관에 블록딜로 매각한 것도 그런 사례다.
○블록딜은 시간 외 대량매매
블록딜(Block Deal)은 말 그대로 많은 주식을 덩어리째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보유 지분을 쪼개 파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넘기는 것이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시간 외 대량매매'를 의미한다.
블록딜을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시장에서 주가에 충격을 주지 않고 제값에 팔기 위해서다.
가령 대규모 지분을 들고 있는 A라는 대주주가 어떤 이유로든 지분을 팔려고 보유 주식을 시장에 내놓는다고 가정해 보자.
주가는 일반적으로 수요(매수세)와 공급(매도세)에 의해 움직이므로 만약 공급이 갑자기 늘어나면 하락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대주주가 지분을 장내에 내놓았다는 소식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기관투자가는 물론 일반 소액주주들도 혹시 나쁜 소식이 있는가 싶어 주식을 앞다퉈 팔려고 하기 때문에 주가는 폭락하기 십상이다.
주가가 빠지면 대주주 입장에서도 손해다.
결국 팔고자 하는 가격에 팔 수 없게 된 대주주는 지분 매각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블록딜을 이용하면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도 원하는 값에 지분을 넘길 수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블록딜이 이뤄지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매도자가 주간사(증권사)를 선정하고 주간사는 일종의 중개인 역할을 하면서 매도 물량을 받아갈 수 있는 매수자를 물색한다.
매수자가 나타나면 두 가지 방법으로 지분을 넘긴다.
첫 번째 방법은 매수자로 하여금 가격을 제시하게 하고 높은 가격을 써낸 곳에 지분을 넘기는 경쟁입찰 방식이다.
두 번째 방법은 매도자가 일방적으로 매도 가격과 수량을 정한 후 매수 신청 경쟁률에 따라 매수자에 분배하는 것이다.
블록딜은 시장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보통 장 시작 전이나 장이 끝난 후 이뤄진다.
매수자는 보통 자금력이 있는 국내외 기관투자가가 대상이다.
○블록딜 중개는 외국계가 독차지
블록딜은 대규모 주식이 거래되는 만큼 중개 역할을 맡은 증권사들로서도 커다란 먹잇감이다.
한번 대규모 블록딜을 맡으면 적게는 수십억원,많게는 수백억원의 중개 수수료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모가 큰 블록딜은 대부분 외국계 증권사들의 차지가 되고 있다.
올 상반기에 있었던 예금보험공사의 신한지주 지분 블록딜(주간사 UBS)을 비롯 코메르츠은행의 외환은행 지분 블록딜(주간사 골드만삭스와 UBS),외환은행의 현대건설 지분 블록딜(주간사 모건스탠리),헤르메스펀드의 현대산업개발 지분 블록딜(주간사 크레디스위스),칼스버그의 하이트맥주 지분 블록딜(주간사 리먼브러더스)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증권사가 대규모 블록딜에 참여한 것은 최근 채권단의 하이닉스 지분 블록딜이 거의 유일하다.
더구나 이마저도 국내 증권사들이 단독으로 한 것이 아니라 외국계 증권사와 공동으로 진행했다.
국내 상장 기업들의 블록딜에서 국내 증권사가 외국계에 밀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기관투자가를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에서 열세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UBS 등 해외 투자은행들이 국내 블록딜을 독차지하는 것은 국제적인 네트워크에서 국내 증권사와는 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다.
정종태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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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래, 매도.매수자 물량.가격 미리 정해놓고 거래 ]
대량으로 주식을 거래하는 방법으로 블록딜 외에 자전거래(cross trading)도 있다.
대량으로거래한다는 면에서 블록딜과 비슷하지만 거래 방식은 약간 다르다.
블록딜은 증권사를 통해 매수희망 투자자를 모은 다음 입찰 등의 방법으로 주식을 파는 데 반해 자전거래는 주식을 팔려는 매도자와 사려는 매수자가 미리 짜고 정해진 물량을 정해진 가격으로 주고받는 거래를 말한다.
다시 말해 매도자와 매수자간에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매도자가 정해진 가격에 매도 주문을 내는 것과 동시에 매수자는 동일 수량의 매수 주문을 내서 매매가 체결되는 식이다.
물론 증권사가 중간에 끼지만 블록딜에서처럼 매수자를 상대로 주문을 받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매수-매도주문을 동시에 체결시켜주는 단순 중개 역할만 한다.
자전거래는 거래량이 많아 주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증권선물거래소에 신고하도록 돼있다.
실제 장중에 일어나는 자전거래는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보통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자전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선 장이 끝난후에나 장이 시작되기 전에도 자전거래를 하기도 한다.
'모멘텀' '어닝 시즌' '서머 랠리' '리레이팅'…. 한글 애용론자들 입장에서 보면 분통 터질 만한 일이다.
더구나 '모멘텀→계기' '어닝 시즌→실적 발표 기간' '서머 랠리→여름휴가철 주가 강세''리레이팅→재평가' 등 번역할 수 있는 우리말이 엄연히 있는 데도 굳이 원어를 그대로 쓰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데는 나름대로 변명 거리가 있다.
자본에 국적이 없어져 세계 주식시장이 한몸처럼 움직이는 상황이 되다 보니 번역 과정을 거칠 시간적 여유가 없어진 데다 일반 투자자들 사이에서 워낙 널리 쓰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블록딜도 그 중 하나다.
최근 기업들의 대규모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블록딜이 워낙 자주 일어나다 보니 기사에서도 블록딜이란 용어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
다음은 지난 6월26일자 한국경제신문 증권면에 실린 기사 일부분이다.
'채권단이 보유한 하이닉스 지분의 블록딜을 위한 채권단과 주간사들 간의 협상이 주말 마라톤 협상 끝에 25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에 따라 26일 개장 전에 국내외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한 블록딜이 이뤄질 예정이다.'
하이닉스처럼 블록딜은 굳이 M&A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기존 대주주가 지분을 파는 과정에서 자주 동원된다.
하이트맥주의 2대 주주인 칼스버그가 지난 6월 중순 보유 주식 252만여주를 기관에 블록딜로 매각한 것도 그런 사례다.
○블록딜은 시간 외 대량매매
블록딜(Block Deal)은 말 그대로 많은 주식을 덩어리째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보유 지분을 쪼개 파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넘기는 것이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시간 외 대량매매'를 의미한다.
블록딜을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시장에서 주가에 충격을 주지 않고 제값에 팔기 위해서다.
가령 대규모 지분을 들고 있는 A라는 대주주가 어떤 이유로든 지분을 팔려고 보유 주식을 시장에 내놓는다고 가정해 보자.
주가는 일반적으로 수요(매수세)와 공급(매도세)에 의해 움직이므로 만약 공급이 갑자기 늘어나면 하락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대주주가 지분을 장내에 내놓았다는 소식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기관투자가는 물론 일반 소액주주들도 혹시 나쁜 소식이 있는가 싶어 주식을 앞다퉈 팔려고 하기 때문에 주가는 폭락하기 십상이다.
주가가 빠지면 대주주 입장에서도 손해다.
결국 팔고자 하는 가격에 팔 수 없게 된 대주주는 지분 매각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블록딜을 이용하면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도 원하는 값에 지분을 넘길 수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블록딜이 이뤄지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매도자가 주간사(증권사)를 선정하고 주간사는 일종의 중개인 역할을 하면서 매도 물량을 받아갈 수 있는 매수자를 물색한다.
매수자가 나타나면 두 가지 방법으로 지분을 넘긴다.
첫 번째 방법은 매수자로 하여금 가격을 제시하게 하고 높은 가격을 써낸 곳에 지분을 넘기는 경쟁입찰 방식이다.
두 번째 방법은 매도자가 일방적으로 매도 가격과 수량을 정한 후 매수 신청 경쟁률에 따라 매수자에 분배하는 것이다.
블록딜은 시장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보통 장 시작 전이나 장이 끝난 후 이뤄진다.
매수자는 보통 자금력이 있는 국내외 기관투자가가 대상이다.
○블록딜 중개는 외국계가 독차지
블록딜은 대규모 주식이 거래되는 만큼 중개 역할을 맡은 증권사들로서도 커다란 먹잇감이다.
한번 대규모 블록딜을 맡으면 적게는 수십억원,많게는 수백억원의 중개 수수료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모가 큰 블록딜은 대부분 외국계 증권사들의 차지가 되고 있다.
올 상반기에 있었던 예금보험공사의 신한지주 지분 블록딜(주간사 UBS)을 비롯 코메르츠은행의 외환은행 지분 블록딜(주간사 골드만삭스와 UBS),외환은행의 현대건설 지분 블록딜(주간사 모건스탠리),헤르메스펀드의 현대산업개발 지분 블록딜(주간사 크레디스위스),칼스버그의 하이트맥주 지분 블록딜(주간사 리먼브러더스)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증권사가 대규모 블록딜에 참여한 것은 최근 채권단의 하이닉스 지분 블록딜이 거의 유일하다.
더구나 이마저도 국내 증권사들이 단독으로 한 것이 아니라 외국계 증권사와 공동으로 진행했다.
국내 상장 기업들의 블록딜에서 국내 증권사가 외국계에 밀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기관투자가를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에서 열세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UBS 등 해외 투자은행들이 국내 블록딜을 독차지하는 것은 국제적인 네트워크에서 국내 증권사와는 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다.
정종태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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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래, 매도.매수자 물량.가격 미리 정해놓고 거래 ]
대량으로 주식을 거래하는 방법으로 블록딜 외에 자전거래(cross trading)도 있다.
대량으로거래한다는 면에서 블록딜과 비슷하지만 거래 방식은 약간 다르다.
블록딜은 증권사를 통해 매수희망 투자자를 모은 다음 입찰 등의 방법으로 주식을 파는 데 반해 자전거래는 주식을 팔려는 매도자와 사려는 매수자가 미리 짜고 정해진 물량을 정해진 가격으로 주고받는 거래를 말한다.
다시 말해 매도자와 매수자간에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매도자가 정해진 가격에 매도 주문을 내는 것과 동시에 매수자는 동일 수량의 매수 주문을 내서 매매가 체결되는 식이다.
물론 증권사가 중간에 끼지만 블록딜에서처럼 매수자를 상대로 주문을 받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매수-매도주문을 동시에 체결시켜주는 단순 중개 역할만 한다.
자전거래는 거래량이 많아 주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증권선물거래소에 신고하도록 돼있다.
실제 장중에 일어나는 자전거래는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보통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자전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선 장이 끝난후에나 장이 시작되기 전에도 자전거래를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