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아주 다양한 원인으로 발병해 우리 인간을 괴롭히는 대표적 난치병이다.

그래서 암 정복은 곧잘 우리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이런 암 치료법 가운데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게 '유전자'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암이 생겨서 퍼지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들을 찾아내 그 기능을 조절함으로써 암을 치료하는 새로운 기술이다.

백성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지난 14일 영국 과학저널 '네이처 세포생물학'지에 발표한 연구도 바로 이런 암 전이 유전자에 관한 내용을 담아 주목받았다.

○'스모' 단백질이 암 전이의 '스위치'

암이 무서운 것은 놀랄 만한 속도로 우리 몸의 다른 부위에 퍼진다는 것이다.

암세포는 혈관이나 임파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이런 '전이'(轉移) 현상을 일으켜 결국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암 전이 현상 규명은 암 정복의 최대 난제로 꼽히기도 한다.

백성희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이 같은 암 전이의 주요 원리 중 하나를 밝혀냈다.

우리 몸 속 '스모'(SUMO)라는 이름의 단백질이 암 전이에 관여하는 '카이원'(KAI1)이라는 유전자를 조절한다는 내용이다.

백 교수는 이미 지난해 카이원 유전자가 암의 전이를 억제해 준다는 사실을 밝혀내 네이처에 발표했었다.

이번 성과는 그 후속 연구의 결과다.

백 교수는 암의 전이를 막아주는 카이원의 기능을 방해하는 우리 몸 속 '렙틴'(Reptin)이라는 단백질을 연구하던 중 스모 단백질이 카이원의 작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스모와 렙틴이 결합해 있는 경우엔 렙틴이 카이원의 활성화를 막아 암 전이를 억제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반면 스모와 렙틴이 떨어져 있는 경우엔 카이원이 정상적으로 작동해 암 전이를 막아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립선 암세포주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스모와 렙틴의 결합 물질에서 스모를 따로 잘라내면 카이원 유전자가 정상적으로 활성화돼 암 전이 억제 기능을 수행했다.

이는 곧 스모 단백질이 카이원의 암 전이 억제 기능을 켜거나(On) 끄는(Off)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 교수는 "결과적으로 렙틴에 스모가 붙고 떨어지는 것을 조절하면 암세포의 전이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스모 단백질에 의한 암 전이 조절을 최초로 규명한 것으로 새로운 암 치료제 발굴을 위한 기반 연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암 전이 억제 약물 개발도 가능

이번 연구를 응용하면 암 전이를 막아주고 암 세포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항암제를 개발할 수도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내다본다.

연구팀은 실제로 렙틴과 스모의 결합 물질에서 스모 단백질을 잘라내 주는 가위 역할을 하는 '센프원'(SENP1)이라는 효소를 발굴,실험을 통해 효과를 확인했다.

센프원이 렙틴과 스모를 분리시켜 줌으로써 암 억제 기능을 하는 카이원 유전자를 활성화시켜 주는 것이다.

백 교수는 "센프원과 같은 물질들을 찾아내 연구하면 암 전이를 억제하는 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실제로 실용화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번 연구만으로 암 전이의 원리가 다 밝혀진 것은 아니다.

암은 이외에도 아주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과 경로를 통해 발생하고 또 퍼져나가는 그야말로 '골칫거리'이기 때문이다.

장원락 한국경제신문 과학기술부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