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이런 자연 단백질을 인공적으로 설계해 다양한 종류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김학성 교수와 박희성 박사 팀이 주인공.김 교수 팀은 '신 기능 단백질 설계 기술'로 자연 단백질을 만드는 데 성공해 최근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사이언스는 별도의 '전망(Perspective)'란을 통해 연구 내용과 파급 효과를 상세히 설명하고 연구 성과를 비중 있게 다뤘다.

이번 연구 결과를 활용하면 신약이나 산업용 효소로 쓰일 수 있는 새로운 단백질을 아주 간편하게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에는 스웨덴 웁살라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들이 함께 참여했다.

◆단백질 리모델링한다

생물체 내에는 모두 합해 5만 종류 이상의 단백질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단백질은 각각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 구조를 들여다보면 대개 기본적인 골격(틀)은 수백 개 정도로 한정돼 있다.

KAIST 연구팀은 이 같은 점에 착안,기존의 알려진 단백질 골격에다 원하는 요소들을 첨가하거나 빼는 방식으로 새로운 단백질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여기에는 단백질을 설계하는 과정과 단백질 생산을 명령하는 유전자를 새롭게 배열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실제로 '글리옥살라제 Ⅱ'라는 효소에 이 방법을 적용한 결과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의 고리 구조를 끊어 주는 새로운 기능의 단백질이 만들어졌다.

글리옥살라제 Ⅱ의 구조 골격에서 특정 요소들을 떼어낸 뒤 다른 요소들을 붙여 넣음으로써 새 단백질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단백질을 주택에 비유하면 일종의 리모델링을 한 셈이다.

◆새로운 단백질 의약품 개발한다

이번 기술은 단백질 의약품이나 산업용 효소의 개발과 단백질 공학 연구에 널리 활용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단백질 의약품은 인슐린이나 성장 호르몬,치료용 항체 등이며 효소는 최근 활발히 산업화되고 있는 기능성 물질이다.

대부분의 단백질은 그 특이성이나 안정성 때문에 실제 의약용이나 산업용으로 사용되기에는 많은 한계점을 갖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 목적에 맞는 특성이나 새로운 기능을 지닌 단백질을 설계하는 연구가 많이 진행돼 왔지만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연구 결과는 보고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에 김 교수 팀이 단백질 설계 기술을 이용해 실제 단백질을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새로운 단백질 개발과 활용의 가능성을 열었다.

또 기존 단백질 의약품이나 효소의 기능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갖도록 단백질의 구조를 원하는 대로 설계하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산업용 효소 업체,제약회사 등과 공동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 기술이 새로운 단백질 개발에 효과적으로 응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백질 진화 밝힌다

단백질은 DNA·RNA 등 핵산과 함께 생명체를 유지하는 기본 물질이다.

모든 생명 현상에는 단백질이 핵심 물질로 작용한다.

생물체 내의 이런 수많은 단백질들이 모두 예전부터 그대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바뀌어 왔다.

단백질의 생성을 명령하는 유전자 염기서열이 변형되거나 유전자 조각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삽입 또는 제거되는 복잡한 생명현상 과정이 진행돼 온 결과다.

김 교수 팀의 이번 기술을 활용하면 이 같은 단백질 진화 과정의 비밀도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단백질의 골격을 비교해 보면 진화 과정 중 어떻게 새로운 유전자 요소가 달라붙거나 제거됐는가를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5만여 종이나 되는 다양한 단백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도 연구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장원락 한국경제신문 과학기술부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