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진화의 비밀] 침팬지 DNA지도 인간과 96% 일치

진화론은 종래의 인류 과학사를 송두리째 뒤흔든 학설이다.인간은 처음부터 인간이었다는 기존의 관념을 허물어뜨리며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진화론이 학계에서 온전하게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에 찬성하지 않고 있으며,특히 이를 인류에게 적용하는 것에는 더더욱 반대하고 있다.하지만 진화론이 현대 과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인류는 언제 생겼으며 우리와 비슷한 침팬지와는 어떻게 갈라져 나왔을까.침팬지와 고릴라,그리고 우리 인류의 먼 조상은 뿌리가 같을까.과학자들은 진화론에 근거해 오랫동안 이같은 의문들을 풀려고 노력해 왔다.


그동안 화석 연구를 통해 인류 진화의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과학자들은 이제 생로병사의 근원인 유전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인간 게놈 지도의 완성에 이은 침팬지 게놈 해독으로 진화의 비밀은 한걸음 더 우리 앞에 다가오게 됐다.



지난 1일자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에는 진화와 유전자 연구에 중요한 획을 그을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인간을 제외한 영장류로는 처음으로,포유동물로는 네 번째로 침팬지의 게놈(genome)을 완전 해독한 것.


미국이 주도한 '침팬지 게놈분석 컨소시엄'은 24살짜리 수컷 침팬지인 '클린트'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사람과 침팬지의 DNA 서열이 96%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인간 진화의 비밀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다.


◆가깝고도 먼 침팬지


진화론자들은 영장류인 사람과 침팬지가 약 600만년 전쯤에 같은 조상에서 서로 갈라져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각기 다른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더 유전적으로 차이를 갖게 된 것으로 설명한다.


이번 연구 결과 사람과 침팬지의 게놈을 구성하는 DNA 염기서열은 96%가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서로 다른 나머지 4%가 생식과 두뇌 발달,질병 면역성 등에 결정적인 차이를 가져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수치는 사람과 침팬지가 유전적으로 꽤 가깝다는 것을 말한다고 연구팀은 해석했다.


하지만 진화론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여겨져온 사람과 침팬지 사이에서 4% 차이는 생각보다 큰 수치라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유전적 차이는 사람과 침팬지의 생리적 차이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사람의 염증 반응에 작용하는 주요 유전자 3개가 침팬지에게는 없는 반면 흔히 치매로 불리는 알츠하이머병을 막아주는 침팬지의 유전자가 사람에게는 없다.


같은 유전자라도 기능에서 차이를 보인 것도 적지 않다.


이 같은 발견은 사람이 왜 침팬지가 걸리지 않는 알츠하이머병이나 암,에이즈 등에 걸리는지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자를 보다 정밀하게 비교 분석하면 무엇에 의해 사람과 침팬지가 다른 종으로 진화했는지도 밝힐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이 같은 주장은 진화론이 맞다는 가정 아래서다.


◆사람의 '남자' 유전자는 건재


이번 연구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남성'을 결정하는 Y염색체에서 사람과 침팬지가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사람의 경우 Y염색체에 포함된 유전자 수가 지난 600만년 동안 27개 정도의 숫자를 유지해 왔으나 침팬지의 경우 상당수가 퇴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Y염색체는 3억년 전쯤 처음 생겨났을 당시 '여성'을 결정짓는 X염색체와 비슷한 수의 유전자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XX의 형태로 짝을 갖는 X염색체와 달리 XY의 형태로 된 Y염색체는 돌연변이가 일어날 경우 유전자를 교환해 고칠 수 있는 짝이 없는 관계로 진화를 거치면서 점점 쇠퇴해 가고 있다는 게 통설이다.


말하자면 Y염색체의 진화가 그 끝에 다다르면 남성을 결정짓는 유전자도 사라져 남녀의 성 구분이 없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 침팬지와 달리 사람의 Y염색체는 진화 과정에서도 그 기능이 보호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연구진은 침팬지의 왕성한 성행위가 Y염색체 진화 속도를 가속화시킨 것으로 해석했다.


가장 센 수컷이 거의 모든 암컷을 거느리는 침팬지 세계에서는 암컷들을 만족시키는 정자 생산력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뛰어난 정자 생산 능력을 가진 유전자 체계가 살아남고 나머지는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인간은 극단적인 일부다처제를 피함으로써 남성의 몸이 정자 생산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돼 결국 남성 유전자인 Y염색체를 보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장원락 한국경제신문 과학기술부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