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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일탈의 언어' 선보인 60년 전 비문논쟁

    “‘야만한 원색’은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고, ‘서기한 광채’는 아마 ‘瑞氣한 光彩’인 모양인데 ‘서기(瑞氣)’는 명사다. 명사 밑에 ‘-한’이 붙어도 좋다면 ‘인간(人間)한’ ‘지구(地球)한’ ‘적색(赤色)한’ ‘청색(靑色)한’도 다 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김동리)“‘야만(野蠻)’은 ‘야만한’ 따위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서기하는 광채’는 기호지방, 특히 충청도에서 쓰는 말이다. 어둠 속에서 인광처럼 퍼렇게 빛나는 것을 ‘서기한다’고 한다. ‘고양이가 서기한다’ ‘서기하는 호랑이의 눈’이라고 얼마든지 말한다.”(이어령) 이어령-김동리 대가들도 국어문법성 다퉈1959년 2월, 20대 청년 비평가로 활동하던 이어령 선생의 번역시를 두고 경향신문을 통해 지상논쟁이 벌어졌다. 우리 사회 대표적 석학이던 고(故) 이어령 선생이 젊은 시절 당대 문단의 중진인 소설가 김동리 선생과 벌인, 이른바 ‘비문논쟁’의 한 대목이다. 은유와 비문(非文) 여부를 둘러싼 내밀한 공방 속에서 수사법과 국어 문법 사이의 거친 충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들의 논쟁 가운데는 특히 ‘명사+하다’ 용법을 직접적으로 거론한 대목도 있다. 이를 통해 우리말에서 ‘규범의 준수’와 ‘일탈의 유혹’ 사이에 생기는 딜레마를 살펴보자.‘서기한 광채’에서 ‘서기’를 ‘瑞氣’로 해석한다면 어법적으로 ‘서기한’은 틀린 표현이다. ‘瑞氣’란 ‘상서로운 기운’이다. ‘기운하다’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