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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부사어를 쓰면 문장에 리듬이 생기죠

    전국 곳곳에서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지난 4월 7일은 제65회 ‘신문의 날’이기도 했다. 구한말 기울어가는 국운 속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이 탄생했다. 그날이 1896년 4월 7일이다. 언론인들의 ‘생일’이라고 할 수 있는 신문의 날은 이날을 기념해 제정됐다. 명사 많이 쓰면 ‘압축성’ 좋아도 ‘서술성’ 떨어져독립신문은 한국 언론사(史)에서 국어사적으로도 큰 획을 그었다. 우리나라 신문 최초로 한글로만 쓰고, 띄어쓰기를 도입했다는 점에서다. 창간 사설에서 한글로만 쓰는 이유를 “상하귀천이 다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로, 띄어쓰기는 “누구나 말을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독립신문의 ‘알기 쉽게 쓰기’ 정신은 120여 년이 지난 요즘 글쓰기에도 유효하다.첨가어인 우리말은 조사나 어미 변화로 문장 성분을 만들고 운율도 준다. 그러면서도 조사나 어미를 떼어내고 명사만으로도 의미 전달이 가능하다. 이런 경우 글자 수를 줄이면서 개념만으로 의미 표현을 할 수 있으므로 압축 효과도 기대된다. 그래서인지 글쓰기에서 명사(또는 명사구) 사용의 유혹은 끊임없이 일어난다.예를 들어보자. “정부는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주가가 1년 전에 비해 2배로 올랐다.”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문장은 명사를 사용해 다음같이 줄일 수 있다. “정부, 사태 심각 인식.” “주가, 1년 새 2배 상승.” 이 같은 명사 나열체는 그 자체로 ‘의미의 압축성’과 우리말 특성인 ‘서술성 확보’ 간 역(逆)관계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일반적인 글쓰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의'나 '~부터' 함부로 쓰면 글이 어색해져요

    집 근처 한 가게 앞에 내걸린 안내 문구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OO생협 매장의 오픈시간은 10시부터입니다.’ 우리말이긴 한데 우리말답지 않다. 어찌 보면 흔한 표현인 듯하지만, 우리말을 비틀어 써서 어색해졌다. 이런 이상한 말들을 생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명사구 남발하면 문장 흐름 어색해져이 말은 몇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이 눈에 띈다. 우선 단어 사용이 어색하다. ‘오픈시간’이 ‘10시부터’라고 한다. 문 여는 시간이 10시면 10시지, 10시부터는 무엇일까? 우리는 무심코 이 ‘부터’라는 조사를 남용한다. “오후 2시부터 학급회의가 열린다.” “새 학기가 시작하는 날짜는 10일부터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OO회장에 취임했다.” 이런 데 쓰인 ‘부터’는 다 어색하다. 오후 2시에 학급회의가 열리는 것이고, 10일 학기가 시작하는 것이다. 회장에 취임한 것 역시 지난해 말이다. 여기에 ‘부터’가 붙을 이유가 없다.외래어 남발도 거슬린다. 가게를 연다고 할 때 ‘오픈’을 너무 많이 쓴다. 문을 여는 것도 오픈이고, 행사를 시작하는 것도 오픈이다. 가게를 새로 내는 것도 오픈이라고 한다. 하도 많이 쓰여 거의 우리말을 잡아먹을 정도다. 상황에 따라 ‘열다, 시작하다, 선보이다, 생기다, 차리다, 마련하다, 막을 올리다’ 등 섬세하고 다양하게 쓸 우리말 어휘가 얼마든지 있다.문장 구성상의 오류도 간과할 수 없다. ‘관형어+명사’ 구조의 함정에 빠졌다. ‘매장의 오픈시간’은 매우 어색한 구성이다. ‘오픈시간’을 주어로 잡아 그렇게 됐다. 가게가 주체이므로 ‘매장’을 주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아닌'과 '아니라'의 차이

    이동통신 3사가 지난 1일 세계 최초로 5세대(5G) 상용 전파를 송출하며 ‘5G 시대’ 개막을 알렸다. 한 회사는 곧바로 5G 첫 가입자를 선정해 발표하기도 했다. 언론에서도 앞다퉈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그중 주목할 만한 문구가 하나 있었다. ‘5G 1호 가입자는 사람 아닌 로봇.’‘아니라’ 써야 할 곳에 ‘아닌’ 남발해기사에서도 십중팔구 이런 식의 문구가 이어졌다. 사람 아닌 로봇? 이게 가능한 표현인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겠는데…. 하지만 아무래도 어색하다. 이런 식의 표현은 다양한 상황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얼마 전 치킨 가격이 화제가 됐을 때다. “치킨 가격이 다시 들썩인다. 페리카나 등은 최근 가맹본부가 아닌 가맹점주 주도로 메뉴 가격을 1000~2000원씩 올렸다.” ‘가맹본부가 아닌 가맹점’은 또 무슨 말일까? 가맹본부인 가맹점이 따로 있나? 그렇다면 말이 되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그런데도 사람들은 별 탈 없이 이런 말을 흔히 쓴다. 언제부터인지 이런 표현이 급속히 늘어 우리말글을 시달리게 하고 있다. △자율주행차는 이제 미래가 아닌 현실 속의 이야기다. △그는 안보전문가가 아닌 통상전문가다. △내일 행사에는 대통령이 아닌 국무총리가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말로 할 때는 “미래가 아니라 현실이야”라고 한다. 이를 “미래가 아닌 현실이야”라고 하는 게 요즘 글쓰기 실태다. 나머지도 모두 ‘A가 아니라 B’로 써야 할 문구다. ‘아닌’과 ‘아니라’를 구별하기 위해 특별히 문법적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모국어 화자라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집합 관계를 따지는, 약간의 수학적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