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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세계사 바꾼 중세의 '위조 문서'

    중세 유럽에서 ‘문서 위조’는 일상화된 현상이었다. 일반적으로 메로빙거 왕조 시대 사료의 50% 이상, 카롤링거 왕조 초기 4명의 왕에 관련한 사료는 15%가량이 위조품으로 알려져 있다. 샤를마뉴 대제 이름으로 작성된 270여 개 문서 가운데 100여 개는 위조본이라고 한다.중세인의 위조 개념과 그에 대한 죄의식은 현대인과는 매우 달랐다. 위조를 한 주체는 바로 세속의 권력자와 교회 관계자들이었다. 이 같은 중세의 위조 행위를 두고 ‘도덕성의 무감각화’라는 윤리적 비난부터 사기행각이라는 시각, 중세 고유의 일반화된 심성이라는 해석까지 다양하게 전개됐다. 중세인들이 “천국으로 가기 위한 옳은 일을 한다”는 신념으로 적극적으로 위조 행위를 벌였다는 분석까지 나온다.이런 흔하디흔한 위조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게 이른바 ‘콘스탄티누스 대제 기진장(寄進狀, Donation of Constantine)’이라고 불리는 문서다. 교황의 수위권과 교황 중심 교회를 확립하는 과정에 관여한 대표적 위조문서다.‘콘스탄티누스 대제 기진장’은 326년 로마제국의 수도를 동방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옛 제국의 수도인 로마와 이탈리아 전 지역, 그리고 로마제국의 서방 영토를 당시 교황이던 실베스테르 1세(제위 314~335)에게 넘겨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문서는 오랫동안 유럽 서방세계에서 세속 황제권에 대한 교황의 교권 우위를 정당화하는 증거이자 근거로 활용됐다. 역대 교황들은 황제와 갈등을 겪을 때마다 이 ‘기증 문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곤 했다.‘콘스탄티누스 대제 기진장’은 동로마제국(비잔티움 제국)과 교황청 간 대립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