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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사 굴욕' 겪은 황제의 복수…교황권력 '추락'
1991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소련이라는 제국이 해체된다. 70년 넘게 각종 실패를 거듭하며 국민을 괴롭힌 공산주의라는 실험이 막을 내린 것이다. 이를 주도한 게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보리스 옐친이다. 전자는 개혁파로, 후자는 급진 개혁파로 불리지만 둘의 차이를 ‘급진’이라는 수사만으로 설명하면 곤란하다. 개혁파는 개혁을 전진시키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해야 사회주의를 ‘구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급진개혁파는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하루라도 빨리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서야 소련이 산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이념을 살리려는 세력과 나라를 살리려는 세력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를 종교개혁의 선봉장이라고 칭하거나 그가 로마 가톨릭에 95개 조의 반박문을 던진 날인 1517년 10월 31일을 개신교의 창립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소 애매하다. 그 시점에서 루터가 가톨릭과 완전히 등질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다만 사제제도의 남용과 면벌부에 대한 교회의 권한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소련 해체 당시에 비 유해 루터의 주장을 슬로건으로 바꾸면 ‘돌아가자, 초대 교회로’ 혹은 ‘고쳐 쓰자, 가톨릭’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루터는 가톨릭과 싸웠다기보다 반교황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교황청에 대들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가톨릭을 박차고 나가 아예 새살림을 차린 것은 스위스 제네바의 칼뱅이었다.로마 교회의 정치적 수완교황 제도는 장구한 역사를 거치며 얼개가 짜인 시스템이자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제도다. 예수는 생전에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 교회를 세우는 일은 남은 열두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