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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초 해양연구소 세운 포르투칼 엔히크 왕자

     세계경제 중심을 유럽으로 옮긴 두 개의 사건총생산만 놓고 보면 19세기 초까지도 세계의 무게중심은 아시아였다. 정확히는 중국과 인도인데, 19세기 초반 기준 두 나라의 총생산을 합치면 3400억 달러로 전 세계 총생산의 거의 50%를 차지했다. 이게 역전된 시기가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으로, 유럽과 미국이 둘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럼 19세기 이전까지 중국과 인도는 내내 풍요로웠고, 유럽과 미국은 줄기차게 프롤레타리아트 지역이었을까. 총생산에서 유의할 부분이 인구다. 시대마다 전 세계 인구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고, 19세기 초반에는 무려 37%를 기록했다. 이러니 총생산 액수가 높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인도까지 가세하니 총생산 절반이 가능했던 것이다. 나라 가난해도 개인 윤택하던 유럽, 반대인 중국그러나 1인당 GDP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치를 보자. 서기 1000년 서유럽 1인당 GDP 평균은 400달러였다. 중국은 450달러로 아직까지는 중국 우세다. 그러나 1500년이 되면 이 숫자가 서유럽은 771달러로 증가하는 반면 중국은 600달러에 그쳤다. 국가별 총생산액이 아니라 개인의 윤택에서 서유럽은 이미 중국을 따라잡은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후의 추세다. 19세기 초반 중국이 여전히 600달러를 고집하는 동안 서유럽은 1200달러를 돌파하며 두 배 차이로 중국을 따돌렸다. 이유는 당연히 산업혁명이다. 생산성 측면에서 유럽이 거침없이 질주하는 동안 농업 중심인 중국 경제는 장기 침체를 겪고 있었다. 그렇다면 1500년의 동서 역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로 대항해시대 개막이다. 중국이 바다를 포기하고 내륙으로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