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통신사가 못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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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통신사 9차례 오간 200년간 일본은 강국으로 변신…막부, 해양력 강화…경제수도 오사카 인구 40만명
조선은 1636년 일본 막부의 쇼군(장군)에게 ‘통신사(通信使)’란 정식 사절단을 파견했다. 이후 1811년까지 아홉 차례나 파견했다. 자신들을 ‘상국(上國)의 사신’ ‘대국(大國)의 사신’이라고 부르며 성리학적 지식을 뽐내던 조선 통신사들이 오간 200년간 일본은 강국으로 변신했다.왜인이라고 경멸하며 눈길을 돌렸던 배타적인 통신사들도 놀라면서 이렇게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수도였던 오사카는 인구가 40만 명에 달하는 대도시였다. 상업이 발달해 물자가 풍부하고, 많은 사람이 질서를 지키는 도시였다. 도시는 정비가 잘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도로가 숫돌처럼 반반했고, 상하수도 시설을 갖췄다. 강과 운하에는 ‘무지개 다리’들이 걸려 있었고, 수많은 선박이 오갔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이 다니는 거리와 수입품을 전시해놓은 시장들, 목욕의 풍습과 변소의 청결함도 경이로운 눈초리로 기록했다.에도(1868년 이후 동경)는 막부의 쇼군이 거주했던 정치수도였다. 고구려 유민과 신라인들이 개척한 동경만 지역의 작은 어촌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상업과 무역 등을 염두에 두고 건설한 해양도시였다. 발전을 거듭하더니 18세기 초에는 상하수도 설비 등 각종 인프라가 구축됐고, 인구 100만여 명의 세계적 도시로 변모했다. 반면 20세기 초 한양 인구는 25만 명 정도였다.일본은 발달한 수차를 사용했고, 수리시설을 완벽하게 갖춰 따뜻한 기후를 활용해 삼모작을 하고 있었다. 수산업이 발달해 전 해역에서 어로활동이 활발했다. 혼슈 북쪽 아키다, 아모모리 등의 해역에서 잡은 ‘연어’와 ‘다시마’ 등을 실은 상선들이 조선통신사선들이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