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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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스페인선 물가 폭등때문에 저축하는 사람 줄었죠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스페인 사람들은 1550년대에 15만 명에 달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대량 유출이었다. 동시에 식료품 가격이 급등했다. 당대의 스페인 농학자 알론소 데헤레라는 “양고기 1파운드 가격이 예전 양 한 마리 가격에 육박하고, 빵 한 덩이가 밀 1파네가(17.21킬로그램)와 가격이 같다”며 “기름 1파운드(0.4535킬로그램) 가격이 예전 기름 1아로바(12.5킬로그램) 가격 수준”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웃 프랑스 국왕인 샤를 9세도 1560년에 “선대에는 매일 먹을 고기가 넘쳐났고 와인이 물처럼 흘렀지만 지금은 값이 올라 구하기 힘들다”고 푸념했다. 동유럽 폴란드에서도 비슷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이런 배경 아래 미셸 모리노 같은 학자는 17세기에 16세기보다 귀금속이 유럽에 더 들어왔는데도 17세기에 인플레이션이 완화됐고, 18세기에는 브라질의 금과 멕시코의 은 등 다량의 귀금속이 들어왔는데도 물가 상승이 심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귀금속 대량 유입에 따른 물가인상설에 이견을 제시하기도 했다.아무튼 갑작스럽게 유입된 부(富), 그것도 인디오 노예 노동이라는 남의 손을 빌려 값싸게 얻은 재화라는 외부 환경 변화는 잠재돼 있던 인간의 욕망을 건드렸다. ‘게으름’이라는 존재를 당당하게 수면 위로 부각시킨 것이다. 포토시 은광에서 전대미문이란 말이 아깝지 않은 규모로 은이 계속해서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낙관에 빠졌다. “오늘 돈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내일 남미에서 돌아온 함대가 세비아에 정박하기만 하면 다시 엄청나게 풍족해질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계획을 세우고, 저축하고, 힘들여 일할 까닭이 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