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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거란 공격에 한 달 못 버티고 전격적으로 무너진 발해…다양한 종족 구성에 잦은 임금 교체로 정치 혼란 거듭

    한 나라의 멸망은 하루아침에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다. 오랜 기간 많은 신호를 보내지만 깨닫지 못한 채 당할 뿐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전쟁 등이 그랬다. ‘발해국’의 멸망을 화산 폭발 탓으로 돌리려는 사고는 수백 년 쌓인 관습적 오류일 따름이다. 전격적인 거란의 공격요나라의 황제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는 “발해국은 대대로 원수인데, 아직 보복을 완수하지 못했다”며 925년 윤 12월, 푸른 소(靑牛)와 흰 말(白馬)을 죽여 천지(天地)에 제사를 지냈다. 예상을 깬 겨울작전을 펼쳐 부여성(지린성 농안)을 3일 만에 함락했다. 발해의 노상(老相)이 3만 명의 군대로 저항했으나 패했고, 요군은 수도인 홀한성(상경성, 헤이룽장성 닝안현)을 포위한 끝에 큰 전투 없이 4일 만에 항복을 받아냈다. 임금은 소복을 입고 새끼줄로 몸을 묶은 채 신하들과 함께 엎드려 빌었다. 228년의 역사는 허무하게 끝났다. 임금인 대인선과 왕비는 요나라에서 ‘오로고(烏魯古)’ ‘아리지(阿里只)’로 불렸는데, 끌려갈 때 탔던 말의 이름이다.발해는 신비한 나라다. 건국도 극적이었지만 붕괴도 전격적이었고, 멸망 원인과 시기도 불명확하다. 또 ‘발해’와 ‘발해인’이란 이름으로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역사에 등장했다.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불렸으며, 승병(勝兵)이 수만 명이고, 사방 5000리에 달한 영토에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다는 평가를 받는 발해는 왜 채 한 달도 못 버티고 멸망했을까? 역사가 후손에게 줄 유산은 ‘자랑’이 아니라 ‘교훈’이며, 남 탓이 아니라 제 탓을 하는 자세다. 한 달도 못 버틴 228년의 역사21세기와 마찬가지로 국제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