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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신라의 화랑, 충성·용기·우애 갖춘 인재 양성제도…자유의지와 사명감으로 삼국통일 위업 달성 앞장

    신라의 화랑은 어떤 존재들이었을까? 화랑은 ‘풍월도’를 수행하는 젊은이 집단이다. ‘화랑도’는 일본 학자 미지나 아키히데가 만든 조어다. 《삼국사기》는 진흥왕 37년(576년) 봄에 원화를 폐지하고 화랑을 설치했다고 기록했지만, 이미 풍월주가 있었다. 신채호나 최남선 등의 견해를 고려하면 원조선을 계승하면서 건국 초부터 비슷한 조직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5세기부터 고구려 문화와 ‘조의선인(고구려의 수행자 군사집단)’ 등의 영향을 받으며 구체화되고, 질적으로 변화했을 것이다. 강국의 기초 ‘화랑’최치원이 쓴 《난랑비서》에 이런 기록이 있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풍류’라고 한다(國有玄妙之道, 曰風流). …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고, 많은 생명과 만나 변화를 이룬다. 들어와서는 집안에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한다.” 그들은 ‘하늘(天)에 대한 맹세’를 하고, ‘만약 나라가 불안하고, 세상이 혼란하면 가히 맹세를 행한다’는 내용을 돌에 새겼다(임신서기석). 또 승려인 원광은 7세기 초, 위기 상황에서 화랑의 역할을 사군이충(事君以忠)·사친이효(事親以孝)·교우이신(交友以信)·임전무퇴(臨戰無退)·살생유택(殺生有擇)으로 정의했다. ‘충과 효’라는 국가의 가치관과 ‘우애와 용기’라는 사회적 가치관, 그리고 생명을 존중하는 인간상을 구현하는 ‘청년결사체’를 지향한 것이다.차세대 리더들인 화랑은 왕 또는 고승이 추천한 왕족이나 귀족 자제들이었다. 각각 수백 명에서 1000명 정도의 낭도를 거느렸다. 그들은 독특한 수행 방법을 지녔다. 《삼국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