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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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추사는 수선화를 왜 그리 좋아했을까
수선화(水仙花) 김정희날씨는 차가워도 꽃봉오리 둥글둥글그윽하고 담백한 기풍 참으로 빼어나다.매화나무 고고하지만 뜰을 벗어나지 못하는데맑은 물에 핀 너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김정희(1786~1856) :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화가.호는 추사(秋史), 완당(阮堂).혹한 속에 수선화가 피었습니다. 제주 한림공원에는 수십만 송이나 피었습니다. 제주에 자생하는 ‘제주수선화’보다 하얀 꽃받침에 금빛 망울을 올린 ‘금잔옥대 수선화’가 더 많군요. 눈발 속에서 여린 꽃잎을 피웠으니 설중화(雪中花)라 할 만합니다. 똑같이 눈 속에 피는 꽃이지만 매화나 동백과 달리 몸체가 가녀려서 더욱 마음이 끌립니다. 8년 넘는 유배생활의 반려식물추사 김정희가 유배 살던 대정읍 일대에도 수선화가 만발했습니다. 대정향교에서 안덕 계곡까지 이어지는 추사유배길 또한 길쭉한 수선화밭으로 변했지요. 추사는 54세 때인 1840년 이곳에 와 8년 넘게 유배생활을 했습니다.그 외로운 적소의 밤을 함께 보내고, 간난의 시간을 함께 견딘 꽃이 수선화였죠. 그는 수선화를 워낙 좋아해서 여러 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문집에 담긴 시 ‘수선화(水仙花)’에서는 ‘해탈신선’이라고 극찬할 정도였죠.그가 수선화를 처음 본 것은 24세 때였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연경(베이징)에 갔다가 이 꽃의 청순미에 매료됐다고 해요. 43세 때에는 평안감사인 아버지를 만나러 평양에 들렀다가 중국에 다녀온 사신이 아버지에게 선물한 수선화를 달라고 해서 남양주의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 선물했습니다.다산은 감탄하며 ‘어린 손자는 처음 보는지라 부추 잎 같다고 하고/어린 여종은 마늘 싹이 일찍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