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생글기자

    6·25 73주년 맥아더 공과 논란…업적으로 평가해야

    올해 6·25전쟁 발발 73년, 정전 70주년을 맞아 전쟁 영웅 중 한 사람인 더글러스 맥아더 당시 주한 유엔군 사령관을 생각해본다.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논란이다. 첫 번째는 맥아더가 확전론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중국의 6·25전쟁 군사 개입을 보고받고도 상황을 관망했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맥아더는 “1950년 크리스마스 때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해리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호언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는 원자탄 사용, 만주 폭격, 중국 국민당군의 중국 연안 항구 침공 및 한국전 참전 등을 주장했다. 둘째로 그의 주변엔 ‘예스맨’밖에 없었다고 한다. 군 지휘관은 결단력이 있어야 함에도 그는 독선적 성격이 무척이나 강했다. 군 경력을 쌓을 때는 그의 이런 성격과 역량이 결합해 지휘관으로서 최고의 자질을 보여줬다. 그러나 점차 통제하는 위치로 진급하면서 맥아더 주변엔 그의 독선적 성격에 맞춰주는 예스맨들만 남게 됐다고 한다. 미군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 장진호 전투가 그의 성격과 주변 예스맨들 때문에 벌어진 일이란 비판도 있다. 국내에선 맥아더에 대한 이런 평가들로 인해 인천에 있는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자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이에 반대했다. 김 전 대통령은 “맥아더의 생애를 기리자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를 공산화의 위기에서 구해준 그의 업적을 기리자는 것이다”고 했다. 이 말이 참 많이 와닿는다. 맥아더가 생전에 어떤 일을 했든 공산화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해준 ‘한국의 벗’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이건희 생글기자(대구국제고 1학년)

  • 경제 기타

    기업가정신을 고취시켜야 경제가 산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 및 산업 발전의 과정은 기업가정신의 발현과 함께했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고, 1950년 6·25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는 가히 세계 최악이라고 해도 될 만큼 빈민국이었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의 말은 우리나라의 참혹했던 상황을 잘 대변해준다.“대한민국이 전쟁에서 회복되려면 최소한 100년은 걸릴 것이다.”맥아더 장군뿐 아니라 당시 우리나라의 모습을 본 이들은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종군기자로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영국 타임지 기자 역시 한국의 미래를 절망적으로 봤다.“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의 꽃이 핀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나길 바라는 것과 같다.”1960년대 우리 경제 수준은 아시아에서도 하위권으로, 필리핀을 동경의 대상으로 여길 정도였다. 당시 필리핀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60.2달러였고, 우리나라는 91.6달러였다. 1인당 GDP 수치만으로도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세 배 정도 잘살았다. 1961년의 필리핀은 우리에게 선진국이었던 셈이다. 도전정신과 혁신적 발상으로 온갖 시련 극복하지만 50년이 지난 현재는 어떤가? 우리나라와 필리핀의 경제적 지위가 완벽히 뒤바뀌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필리핀보다 10배가량 높다. 지금은 도리어 필리핀이 우리나라를 부러워하게 됐다. 50년 전만 해도 산업 인프라, 자본, 기술, 경험 하나 없이 저개발 농업국에 불과했던 작은 나라 대한민국. 하지만 고작 반세기 만에 철강, 정유·화학, 기계, 자동차, 조선, 전기·전자 등 대부분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서며 선진 공업국으로 거듭났다.이처럼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