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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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한국 무역 58년 1.5조 달러 향해 질주
1964년 11월 30일 한국은 처음으로 수출 1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눈부신 성과를 거둔 이 날을 ‘수출의 날’로 정했습니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의 연간 수출액은 3000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1억 달러는 말 그대로 경이로운 실적이었습니다. 당시 수입은 거의 없었습니다. 해외 원조만 받던 나라였으니까요.그로부터 58년이 지난 올해 우리의 수출액은 얼마나 늘었을까요? 놀라지 마십시오. 자그마치 64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산업통상자원부)입니다. 무려 6400배 성장한 겁니다. 세계 7위권의 수출 규모입니다. 그럼 수입과 수출을 합한 무역액은 얼마나 될까요? 1조2419억 달러입니다. 한국이 ‘무역 1조 달러’를 처음 돌파한 건 2011년 12월 5일(지금의 무역의 날)입니다. 이제 1조 달러를 지나 1조 5000억 달러를 향해 진군하는 중입니다. 아프리카 케냐보다 가난했던 한국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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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김우중 前 대우그룹 회장 타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으로 전 세계에서 신시장을 개척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남긴 명언이다. 지난 9일 83세의 나이로 별세한 김 전 회장은 ‘프런티어맨(변경개척자)’이었다. 맨주먹으로 일어나 한때 재계 2위 대우그룹을 일군 그는 줄곧 남들이 밟지 않은 새로운 시장을 찾아나섰다. 1990년대 동유럽 시장에 눈을 돌린 이후 1년에 200일 이상을 해외에 머물며 비행기와 공항에서 새우잠을 잤다. 당시 ‘탱크주의’는 그의 도전정신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대우의 시대는 20년 전 막을 내렸지만 그 시대의 의미는 여전히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한다.왼쪽 사진은 김 전 회장이 2017년 3월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는 모습이다. 오른쪽 위는 1999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임회장단 취임식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맨 왼쪽), 정몽구 현대차 회장(맨 오른쪽) 등과 대화하는 모습, 아래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게 대우자동차 마티즈를 소개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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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기자
12월5일은 무역의 날…한국 무역의 미래를 생각해 보자
매년 12월5일은 무역의 균형 발전과 무역입국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인 ‘무역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한 1964년 11월30일을 기념해 이날을 ‘수출의 날’로 지정, 매년 기념행사를 치러 오다가 1990년부터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무역의 날’로 명칭을 변경했다. 2011년 12월5일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무역 규모 1조달러를 달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12년 10월 무역의 날을 12월5일로 변경했다.우리나라가 수출에 처음 눈을 뜨기 시작한 1950년대와 1960년대 초에는 태백산맥에서 난 철광석과 텅스텐, 바다에서 난 오징어 등의 수산물을 주로 수출했기 때문에 농업, 광업, 수산업 등 1차 산업이 대부분이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우리는 철강, 선박, 텔레비전 등 다양한 상품을 수출하게 되었으며 중화학공업제품이 수출품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은 반도체, 전자제품, 자동차, 선박, 철강, 석유화학제품 등이었고 특히 반도체의 한 종류인 D램 반도체는 1995년 이후 지금까지 세계 1위 생산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자동차는 1990년 처음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이후 지금은 세계 5위에 올랐다. 오늘날 우리나라 수출상품 1위인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 선박, 휴대전화, 컴퓨터, 철강 등에서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정말 자랑스럽기 그지없는 ‘작지만 강한 나라 대한민국’이다.그런데 한국의 수출시장 점유율은 우리나라와 수출 구조가 비슷한 중국이 빠른 속도로 수출 고도화를 시도하며 추격해 오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한 상황이다.물론 한국의 수출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