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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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생글이 통신
학창시절은 미래 그리는 다양한 '점' 찍는 시기
작년 한 수업 시간에 스티브 잡스의 ‘점 연결하기(Connecting the Dots)’ 연설을 들었습니다. 잡스는 과거 경험이란 점들을 이어보면 현재의 결과라는 멋진 그림이 그려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점들은 미래를 바라보며 이을 수 없다. 과거를 돌아보며 이을 수 있을 뿐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당신이 찍은 점이 미래에 어떻게든 연결될 것이라고 믿는 것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수업을 들을 당시, 그런 주장은 운이 좋은 아저씨의 기만처럼 보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 점을 찍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애플 창업이라는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저에게 그 연설은 ‘난 어쩌다 보니 애플 CEO가 되었지롱’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점을 찍을 수 있는지, 목표에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점을 그리는지를 알려줘야 하지 않나 생각했죠. 막상 그 부분은 “미래에 점들이 어떻게든 연결될 것이라고 믿자”라고 퉁치고 넘어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교수님은 흘러가는 대로 살게 되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성공을 계획할 수는 없지만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당시에는 와닿지 않았던 이야기가 최근 여행을 다니며 공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에서는 많은 일이 계획대로 굴러가지 않았습니다. 여행 중 호스텔 같은 방에서 우연히 같은 대학 친구를 만나 같이 여행을 하게 된 것도, 갑자기 패러글라이딩을 하게 된 것도 모두 계획 밖이었습니다. 가기로 했던 가게가 닫혀 있고, 비가 와서 행사가 취소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여행만 가도 생각과 다르게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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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After 10년…
지금부터 10년 전 인류는 한 위대한 인물을 잃었습니다. ‘애플 신화’의 주인공 스티브 잡스가 2011년 10월 5일, 56세에 세상을 떠난 것이죠. 잡스는 누구보다 극적이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 내며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세계 정보기술(IT)의 흐름을 한순간에 바꿔놓은 잡스는 그야말로 ‘혁신의 아이콘’이었습니다.잡스는 1976년 애플을 창업하며 PC 시대를 앞당겼습니다. 그가 만든 매킨토시는 컴퓨터에 명령어를 입력하는 대신 마우스로 화면에 뜬 아이콘을 클릭하는 것만으로도 실행이 가능하도록 해 누구나 쉽게 PC를 사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가 고안한 컴퓨터 운영체계(OS)는 당시 OS시장을 장악하던 마이크로소프트가 받아들여 ‘윈도’로 개량했고 이는 현재 세계 PC의 9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사업 부진으로 애플에서 쫓겨나야 했던 잡스는 애니메이션 사업에 뛰어들어 ‘토이스토리’ 등 애니메이션 영화를 흥행시키며 또 한 번의 성공을 거둡니다. 이어 1997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애플에 다시 영입됐고 아이팟 아이튠즈 등 혁신적인 IT 제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2007년 잡스는 아이폰이라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기를 내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아이폰은 간단한 화면 터치만으로 작동하며, 쓰고 싶은 응용프로그램(앱)을 자유롭게 설치했다가 삭제하는 등 편리함을 제공했습니다. 특히 PC로 하던 인터넷을 휴대전화로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어느 곳에서도 세상과 연결하게 해 줬습니다.아이폰이 나온 이후 사람들은 쇼핑을 비롯해 일상의 대부분을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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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hungry, stay foolish"…큰 울림 준 '혁신 아이콘'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한 말입니다. 미국 서부의 명문대를 졸업한다는 자부심에 차 있을 졸업생들에게 ‘여전히 (성공에) 배가 고파야 하고, 배울 게 많다’고 충고한 것이죠. 누구보다도 극적이며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잡스의 어록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해군이 아닌 해적이 되는 것이 더 재미있다”잡스는 1976년 실리콘밸리에서 스티브 워즈니악과 애플사를 창업하고 PC를 만들었습니다. 1984년 만든 매킨토시는 컴퓨터에 명령어를 입력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마우스와 아이콘으로 작동케 함으로써 PC 운영체계의 새길을 열었죠. 잡스는 매킨토시 개발팀과의 워크숍에서 해적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나눠줬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고정관념, 규칙 따위에 얽매이지 말고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을 하자는 의도에서였죠. “인간은 수많은 실수를 한다. 덕분에 우리는 새로워지고 창조적이게 된다”매킨토시는 혁신적이었지만 값이 비쌌고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적자가 누적되자 잡스는 전문경영진과 갈등을 겪다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납니다. 잡스는 실패를 거울 삼아 더욱 혁신적인 기술에 몰두합니다. 해고되는 순간이 인생에서 제일 가는 매우 소중한 가르침이었다고 회고한 잡스는 “실수를 빨리 알아내 고친 덕분에 애플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최고의 회사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혁신은 지도자와 추종자를 가르는 잣대”애플에서 쫓겨난 잡스는 넥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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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의 '아이폰 매직' … 내 손안에 '스마트 세상' 열었다
철학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문명은 발전한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고교생 필독서 중 하나인 《러쉬!》의 저자 토드 부크홀츠는 이 말을 쉽게 풀이해줬습니다. “우리는 새 차를 구입할 때마다 자동차 부품 설명서와 안내서를 꼼꼼하게 읽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열쇠로 시동을 거는 것뿐이다.” 화이트헤드의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영역이 바로 휴대폰입니다. 우리는 휴대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라도 휴대폰 기능을 잘 사용합니다. 휴대폰만 있으면 금융거래, 영화 관람, 쇼핑, 영상통화 등을 다 할 수 있지요.휴대폰, 즉 통신의 진화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볼까요? BC 5세기 그리스는 달리기를 정보 전달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마라톤 평원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그리스 군대는 한 병사의 달리기로 승전보를 알렸습니다. 마라톤의 유래지요. 몽골은 말을 타고 달리는 역참 제도로 먼 곳의 정보를 알렸습니다. 전서구(傳書鳩)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훈련된 비둘기 발에 메모지를 달아 보내는 방법이었죠. 날아가다가 매에게 잡혀 먹히면? 봉화(烽火)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 불을 붙여서 알리는 방법입니다. 음성을 전기신호로 바꿔 전달하는 전화는 19세기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에 의해 개발됐습니다. 우리는 음성 전화기를 편의상 1G(Generation: 1세대)라고 부릅니다. 멀리 있는 사람과 매우 쉽게 정보를 건넬 수 있게 문명화된 겁니다.이후부터 기술은 빠르게 진화했습니다. 실내에 고정돼 있던 집전화기는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으로 바뀌었습니다. 2G 시대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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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성공?…꿈과 열정으로 도전하라
요즘 젊은 세대 즉, 청년층은 직장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남들보다 더 나은 조건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소위 '스펙 쌓기'에 열중한다. 특히 학력은 절대적인 스펙으로 취급받는다. 과연 학력이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일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 기업 인력채용 담당자들은 학력보다 다른 부분을 더 중요시한다고 말한다. 아예 학력을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어느 대학에 입학하느냐가 인생의 향방과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단순히 학력이 높다고 성공하거나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대학 졸업장이 없다고 성공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고,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영웅이 많다. 그들은 학력보다는 꿈과 열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하고 싶은 일을 잘하려는 노력이 최고의 스펙투자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워런 버핏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워런 버핏은 11세에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100달러로 주식 투자를 시작하고, 14세에 신문 배달을 하면서 일찌감치 사업가적 면모를 보였다. 자신의 배달 구역을 연구해 가장 빨리 신문을 배달할 수 있는 지름길을 개발했던 것이다. 그리고 신입사원에 해당하는 연봉을 받았다. 당시 워런 버핏이 배달한 신문은 워싱턴포스트였다. 이후 30여 년이 지나 워런 버핏은 워싱턴포스트 최대주주가 돼 살아 있는 성공 신화를 썼다.버핏의 성공에 학력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는가? 버핏은 학교 공부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쏟았다. 지식이 투자의 핵심이라고 믿었기에 일과 중 3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