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
커버스토리
'오징어 게임' 신드롬…세계를 홀린 K드라마
한국 울릉도와 미국 넷플릭스의 공통점은? 오징어 풍년이라는 겁니다. 몇 년 새 어획량이 확 줄어서 울상이던 울릉도가 최근 최대 어획량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업종이 다른 넷플릭스도 ‘오징어’에 투자해 초대박을 터뜨렸다지요.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해 서비스한 9부작 TV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대미문의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동해안 오징어 풍년이 넷플릭스에서도 일어났다니, 재미있습니다.울릉도에 가기 어렵다면 지금 당장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오징어 게임’ 혹은 ‘Squid Game’을 검색해 보세요. 전 세계에서 올라온 오징어 게임 소개 영상, 분석 영상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옵니다. 오징어 신드롬에 ‘탑승’하지 않으면 구독과 좋아요를 늘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인기도를 숫자로 알아볼까요? 동영상 콘텐츠 랭킹을 매기는 사이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은 이 드라마가 보급된 90개국에서 모두 1위에 올랐습니다. 넷플릭스 최초의 기록이라네요.오징어 대박으로 넷플릭스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는 뉴스도 나왔습니다. 넷플릭스 주식 시가총액(주가×주식수)이 2주 만에 12조원이나 늘어났습니다. 제작비로 들어간 돈이 200억원이었던 데 비하면, 그야말로 초초초대박입니다.오징어 게임은 한국 감독(황동혁)이 메가폰을 잡고, 한국 배우(이정재, 박해수, 오영수, 정호연, 위하춘, 허성태, 김주령, 공유, 이병헌 등)가 주축이고, 스토리가 너무도 한국적입니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조차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계인이 열광하면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최고경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일본 대마국과 해양·무역권 다퉜던 우산국…신라, 우산국 확보 힘입어 북진정책 '성공'
신라가 우산국을 복속시킬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전해주는 이야기도 있다. 우산국은 작지만 바다에서는 힘이 셌고, 우해왕은 기운이 장사였다. 대마도의 왜구들이 우산국을 노략질하자 우해왕은 수군으로 원정을 감행했다. 겁먹은 대마국왕은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셋째 딸인 풍미녀를 바쳤다. 우해왕은 왕비로 삼은 풍미녀의 변덕과 사치를 위해 신라까지 노략질했으며, 정치를 게을리했다. 심지어는 신라가 공격한다는 정보를 보고한 신하까지 바다에 처넣었다. 섬사람들은 풍미녀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이라며 근심에 빠졌다. 결국 몇 해 뒤 우산국은 망하고 말았다(《울릉문화》).비록 설화지만, 우산국이 단순한 어민들의 거주지가 아니라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한 동해의 해양소국임을 알려준다. 그뿐만 아니라 해상권과 무역권을 놓고 동해와 남해에서 대마국과 충돌한 상황도 추측하게 한다. 실제로 그 무렵인 544년에는 연해주 해안에 살던 숙신인(여진 계통)들이 봄과 여름에 사도섬(니가타현)에서 어업을 했고, 이후에도 대화 없이 물건들을 교환하는 ‘침묵교역’도 벌였다(《일본서기》). 동해에서도 원양항해가 활발했던 것이다. 해양전략적 가치 큰 요충지그 뒤 신라는 동해 지역을 안정적으로 확보했고, 진흥왕은 북진정책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만큼 우산국은 해양전략적인 가치가 컸다. 항복한 우산국은 신라에 매년 토산물을 바쳤지만 해양문화의 메커니즘과 국제환경을 고려한다면 정치적인 힘은 남아 있었을 것이다. 문화적으로는 신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섬의 북쪽과 남쪽에는 6세기 중엽부터 만든 100여 기의 돌무덤이 남아 있다. 경상도의 영향을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우산국, 일본 가는 동해 항로 '항해 물표' 역할…고구려·신라, 5세기부터 전략적 가치 선점 나서
우리 역사에는 육지의 나라만 있지는 않았다. ‘해중지(海中地)’, 즉 물의 나라, 섬의 나라도 있다. 사료에는 동해의 우산국, 남해의 탐라국과 대마국, 서해의 대석삭국(강화도)과 소석삭국(교동도)만 나온다. 하지만 랴오둥반도의 동남쪽 아래인 장산군도, 경기만 바깥의 백령도를 비롯한 연평군도, 덕적군도, 또 흑산군도에도 소국들이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동해 유일의 섬, 울릉도해가 처음 떠오르는 동해는 남북 길이가 1700㎞, 동서 최대 너비는 1000여㎞, 면적은 107만㎢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타타르 해협’까지 포함한 것이다. 이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하나뿐인 섬이 72.6㎢ 면적의 울릉도다. 1032년 ‘우산국주’가 아니라 ‘우릉성주’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우산국(于山國)이었지만, 이후에는 무릉(武陵), 우릉(羽陵), 우릉도(芋陵島 또는 于陵島, 羽陵島), 우릉성(羽陵城), 독섬 등으로 불렸다. 울릉도에서 88㎞ 떨어진 독도는 ‘새끼섬’이다. 생산활동의 중요한 영역이고 피항하거나 항로를 관측하는 데 절대적인 생활공동체다. 《만기요람》 《증보문헌비고》 등도 ‘울릉(鬱陵) 우산(于山)은 모두 우산국의 땅이다’라고 하나의 역사적 영토로 규정했다.육지에서 울릉도까지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울진에서 159㎞, 강릉에서 178㎞, 삼척에서 161㎞, 포항에서 217㎞다. 《삼국유사》에는 ‘하슬라주(지금의 강릉)의 바다에서 바람을 타고 2일 정도 가면 우릉도(于陵島)가 있는데, 주변이 2만6730보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선사시대 유적도 발굴돼하지만 선사시대에도 사람들은 동해를 건넜다. 섬 안에서 기원전 300년께의 무문토기들이 출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신라, 울릉도·동해안 점령하며 해양활동 강화
한민족의 근대 이후 100여 년의 과정은 불가사의하기 짝이 없다. 35년의 긴 식민지 생활을 자초했고, 다시 동족상잔이라는 자기파멸을 시도하면서 죽음과 폐허, 가난을 남겼다. 그런데 또 50여 년 만에 근대화, 민주화, 정보화에 성공하면서 기적을 만들었다. 500년 이상 약소국이었던 신라는 약 60년 만에 강국이 됐고, 다시 100여 년이 지나 최후의 승자가 됐다. 신라는 도약할 수 있는 시대 상황이 6세기 내내 지속됐고, 해양발전이라는 국가전략의 선택과 김이사부 같은 뛰어난 리더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512년에 영토 확장 신호탄서기 500년, 지증 마립간이 등장했다. 그는 곧 ‘으뜸 되는 간(칸)’이라는 고유 명칭을 버리고, 중국식인 ‘왕’으로 고쳤고, 나라 이름도 ‘사로’ ‘사라’ ‘신라’ 등에서 ‘신라’라고 고정시켰다. 신라는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 즉 ‘덕업이 날로 새로워지고, 그물처럼 사방으로 펼쳐진다’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512년에 본격적인 영토 확장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그해, ‘김이사부’라는 20대 초의 젊은 왕족이 지휘하는 신라 수군은 동해 중부의 항구를 출항해 망망대해를 항해한 끝에 160여㎞ 떨어진 우산국(울릉도)에 당도했다. 그리고 배 이물(앞머리)에 나무를 깎아 세운 사자로 위협하면서, 강력하게 저항하는 이 해양소국을 점령했다. 그는 새로 설치한 실직주(삼척)와 하슬라주(강릉)의 군주가 돼 해양작전을 준비했고, 고구려가 혼란스러운 틈을 이용해 자주(自主) 획득과 실지 회복전에 성공했다. 이로써 고구려는 일본 열도로 진출하는 울진, 삼척, 강릉 등 몇 개의 좋은 항구와 동해 중부 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