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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기타

    이스라엘은 야곱이 천사와 싸워 얻은 이름

    유대인은 참 대단한 민족이다. 나라를 잃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민족이 무려 1800년이 지나 자기들이 살았던 곳에 다시 국가를 세웠다. 여기서 나라를 잃었다는 것은 1910년의 우리와 같은 국권 침탈 아니라 아예 영토를 잃은 실지(失地)를 말한다. 국가의 3대 구성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거할 곳’을 상실한 것이다. 서기 132년 유대인의 마지막 반란이 일어난다. 지도자는 시몬 바르 코크바라고 불리는 사나이로 유대인에게 공식적으로 메시아 인증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상대는 로마제국. 3년여간 이를 악물고 싸웠지만 전투 기계나 다름없는 로마 군단을 상대로 민간인들이 거둘 수 있는 성과는 애초부터 없었다. 로마 군대는 1000개 이상의 마을을 석기시대로 돌려놓았으며 60만 명을 학살했다. 그렇게 짓밟아놓고도 로마는 분노를 멈추지 않았다. 유대인에게 더 이상 자비는 없다는 것을 공언했고, 진압 작전을 말살 작전으로 전환해 아예 끝을 봤다. 예루살렘을 아엘리아 카파톨리아라고 개명했으며, 민족의 이름은 유대인이 아닌 ‘시리아 - 팔레스타인’으로 바꾸었다. 유대인이 그토록 싫어하는 팔레스타인을 이름표로 붙여준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로마는 유대인의 예루살렘 거주를 금지했다. 다 나가고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다. 로마가 상대방 혹은 피지배 민족에게 이토록 가혹했던 것은 카르타고와 벌인 페니키아 전쟁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카르타고를 박살내면서 로마는 그 땅에서 식물의 생장이 불가능하도록 밭에 소금까지 뿌렸다.유대인의 역사는 중동 역사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외국 역사이기도 하다.

  • 생글기자

    배타적 민족주의의 해악, 상상외로 크다

    전쟁으로 비화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으로 이 지역 민간인의 어려움이 날로 가중되고 있다. 우리 청소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비롯된 이 분쟁의 원초적 이유는 무엇일까?여기에는 ‘시오니즘’이라는 유대인 민족주의 운동이 자리 잡고 있다. 시오니즘은 유대인이 조상의 땅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전개한 민족운동이다. 처음엔 19세기 유럽에서 심화된 반유대주의와 유대인 박해에 대한 반발로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에까지 이르면서 시오니즘이 본격적으로 전개됐고, 1948년 5월 마침내 지금의 이스라엘이 탄생했다. 이후 유대인의 대규모 이주와 정착이 시작되면서 이미 그곳에서 살고 있던 아랍인들과의 갈등이 커진 것이다.시오니즘은 이스라엘 민족운동으로서는 큰 역할을 했지만, 실현 방식이 문제였다. 시오니즘의 목표를 평화적으로 달성하는 게 아닌, 무력을 이용한다는 점이었다. 유대인 이주와 정착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토지와 삶의 방식을 잃게 되었고, 이는 계속된 분쟁과 폭력 사태를 초래했다. 이로 인한 민간인의 피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고,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팔레스타인인은 물론이며, 전쟁을 주도해온 이스라엘 국민 또한 크게 피해받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인 시오니즘, 과연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코 이로운 역할을 하지 않는다.송지수 생글기자(예문여고 2학년)

  • 생글기자

    인권 보호와 차별 철폐에 자기모순 없는지 돌아봐야

    인권 탄압과 차별의 역사는 깊다. 유럽의 신항로 개척과 식민지배의 역사가 시작될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지구적 차원의 교류가 늘어나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간 존엄의 가치와 인권 보호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유엔 인권선언, 차별금지법 등과 같은 국제적 조약들이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그러나 조약과 법이 사람의 정서나 심리까지 강제할 순 없기에 완벽하다 할 수는 없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에서 그런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정복지인 팔레스타인 지역 사람들을 극도로 차별하고 분리시킨다. 가자·서안지구, 동예루살렘, 이스라엘 본토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은 사전에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지역 간 이동이 가능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인들에 비해 농지·수자원·가스·석유 등 천연자원을 얻고 건강·교육 등 기본서비스를 받는 데서도 차별당한다. 이런 차별은 당사국 간 해결은 물론, 외교적 노력의 결실도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사회는 다른 말로 힘의 사회고, 소수 강대국을 제외한 나라들의 영향력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결국 유엔 차원에서 세계인권선언문과 같은 인권결의안을 의결하거나, 국제법의 효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제적 연대와 관심을 높여 인권침해 가해국과 그 국민의 정서적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스라엘은 세계를 향해 인권을 얘기하면서 팔레스타인을 향해선 그러지 않는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피해자가 거꾸로 다른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모습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도 인권 보호와 관련해 앞뒤 다른 행동을 하진 않는지 되돌아보며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건희 생글

  • 커버스토리

    'R&D 강국' 한국, 노벨상 왜 못받나

    커버스토리매년 10월이면 세계가 주목하는 ‘발표’가 있습니다. 바로 그해 노벨상 수상자들이 누구냐 하는 것이죠. 지난 4일 온도와 촉각 수용체를 발견한 데이비드 줄리어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스크립스연구소의 아르뎀 파타푸티언 교수가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11일 경제학상까지 6개 부문 13명의 수상자가 모두 발표됐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인 수상자는 올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2000년 고(故)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첫 남북한 정상회담을 하는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한 공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후 20년 넘도록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노벨상은 스웨덴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이 기부한 재산을 바탕으로 매년 인류의 문명 발달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상입니다. 1901년 제정된 이후 노벨상 수상자는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와 명예를 인정받습니다. 이번에 수상한 이들도 모두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입니다. 노벨상은 특히 6개 시상분야 중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등 과학상이 3개에 달할 정도로 기초과학 분야를 중시합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가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인 한국으로선 아직 과학분야 노벨상을 타지 못한 것이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문화적·정서적 차이로 동서양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문학상이나 정치적 이유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평화상과 달리 과학상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이웃 나라 일본은 비록 국적은 미국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간 마나베 슈쿠로 프린스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