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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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기자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급식실에서 저녁 급식으로 나온 ‘모짜체다핫도그’를 먹을 찰나였다. “남규 형” 1학년 후배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며칠 전 그 친구의 반에 논어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 내가 필통을 놓고 갔음을 알려줬다. 할 말 하고 유유히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핫도그를 한 입 베어 물었다.나는 참 많은 이름을 갖고 있다. 남규야, 아들아, 막내야, 남규 형, 선배님, 가끔 신생견이 될 때도 있지만 정작 이 이름들을 듣는 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는 어떠한가. 누군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주었는가. 오늘, 자신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냐는 말이다.코로나가 아직 우리 곁에 있는 2020년의 어느 겨울날, 그 어느 때보다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삶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의 이름을 불러줄 사람들은 점점 옅어져만 가고, 우리의 존재감 또한 서서히 희미해져만 간다. 그 속에서 난 내 이름을 들은 것이다. 들어보기 힘든, 귀한 내 이름을 말이다. 18년 인생에서 처음 들어본 것처럼, 낯설었다. 행복했다. 나의 존재가 증명되는 순간이었다.책 《살아있다는 건》에서 저자 김산하는 말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냥 사는 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라고. 생명은 다른 생명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완성할 수 있다고. 이 무언가를 할 때가 바로 이름을 부르는 때가 아닌가 싶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의 한 구절이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내가 비로소 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