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제품에 아날로그 기능과 디자인을 가미한 디지로그(digilog) 제품이 틈새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 만능의 차가운 디지털 제품에 아날로그적 추억과 감성을 조화시킨 것.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수동기능을 가진 디지털 카메라를 꼽을 수 있다.
최근 유럽 이미지출판협회(TIPA)에서 최고제품상을 받은 엡손의 '레인지파인더' 디지털 카메라 'R-D1'이 선도제품이다.
디카를 디카답게 만드는 디지털 센서가 내장돼 있으나 사진을 찍을 때마다 필름와인더를 감도록 설계됐다.
셔터 스피드와 초점도 수동으로 조절해야 한다.
디자인도 아날로그적이다.
그러나 가격은 웬만한 순수 디지털 제품보다 오히려 비싼 360만원대에 팔리고 있다.
사용하기가 불편한데도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 때문에 부각된 제품이라는 평이다.
140년 전통을 가진 독일의 필름업체 아그파포토가 지난달 27일 디지털 카메라에 견디지 못하고 파산신청을 했으나 추억은 되살아나고 있는 셈이다.
1970∼80년대에 유행하던 대형 녹음기 '붐박스' 모양을 한 MP3도 인기대열에 들어 있다.
올초 독일 유명 일간지인 빌트의 인터넷판에서 베스트 MP3플레이어로 뽑힌 엠피오의 'FG100'이 주인공이다.
세련미를 강조하고 있는 요즘 제품보다 디자인이 훨씬 투박해 보이지만 추억을 자극하는 따뜻함이 인기 비결이다.
종이와 연필을 쓰는 것처럼 태블릿(판) 위에 전자펜으로 그림,문자 등을 입력하는 펜태블릿과 펜마우스는 그래픽 전문가용이라는 용도 제한을 뛰어넘어 일반 보급형 제품으로도 잘 팔리고 있다.
딱딱한 디지털 필체에서 벗어나 '나의 서체'를 전달하려는 아날로그의 감성이 작용한 결과다.
펜태블릿 제품으로는 와콤의 '그라파이어 시리즈'(10만원 안팎)와 미니 펜태블릿 '펜파트너'(4만5000원) 등이 나와 있으며 펜마우스로는 와우테크의 '와우펜'과 펜지의 '펜지' 등이 5만∼6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지난달 초 선보인 MSN 메신저 7.0에도 디지로그가 반영된 '잉크' 대화 기능이 추가됐다.
대화창 하단에 있는 '펜촉' 아이콘을 누르고 '그림판' 환경으로 전환하면 키보드 대신 자신의 필체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