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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기타

    대항해시대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넘어서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시절, 지중해 사람들이 ‘세상의 끝’으로 여겼던 곳이 있다. 지중해 서쪽 끝 지브롤터해협에 있는 일명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지브롤터해협의 고대 명칭이다. 두 기둥은 북아프리카 모로코와 유럽의 이베리아반도 사이 좁은 해협의 남과 북에 솟은 바위산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쪽 기둥은 이베리아반도 남단의 영국령 지브롤터에 속해 있는 해발 425m의 지브롤터 바위산이다. 그러나 남쪽 기둥은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 남겨진 기록이 없다.그리스신화에서 묘사하듯이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곧 세상의 끝으로 여겨졌다. 배를 저어 더 나아갔다가는 세상 끝의 어둠과 지옥으로 추락한다는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고대의 진입금지 경고판인 셈이다. 플라톤이 《티마이오스》에서 헤라클레스의 기둥 너머에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가 있다고 한 것이 대서양(Atlantic Ocean)이라는 이름의 유래다. 단테도 《신곡: 지옥 편》에서 “인간이 더 이상 넘어가지 못하도록 헤라클레스가 경계선을 표시해둔 좁다란 해협…”이라고 언급했다.이렇듯 고대인의 세계관은 헤라클레스의 기둥 안쪽, 즉 지중해에 국한됐다. 이는 지리적 제한일 뿐 아니라 생각의 한계를 규정하는 경계선이기도 했다. 누구도 그 너머 미지의 공포에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지브롤터해협을 넘어간 사람들이 연 대항해시대모두가 헤라클레스의 기둥 너머 세상을 두려워했던 것은 아니다. 진취적인 해양민족인 페니키아(카르타고)인은 서부 지중해를 누비면서 헤라클레스의 기둥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대서양에 면한 포르투갈, 모로코 해안까지 진출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콜럼버스의 교환'은 어떻게 인류를 기아에서 구했나

    1492년 10월 12일은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은 이탈리아 출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그해 8월 3일, 서쪽으로 가는 인도 항로를 개척하러 떠났다가 신대륙, 정확히는 산살바도르섬을 발견한 날이다. 구대륙에 국한됐던 유럽인의 시야가 신대륙 아메리카로 확장된 결정적인 순간이다.그러나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유럽인이 아닌 데다 1506년 죽을 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땅을 인도로 알았다.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1507년 두 차례 항해한 끝에 그 땅이 유럽인들이 몰랐던 신대륙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신대륙은 아메리고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로 불리게 됐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남긴 업적 하나는 분명하다.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 유럽인의 세계관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영웅인가, 침략자인가?1492년은 스페인이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 세력을 상대로 800년간 벌인 ‘레콩키스타’를 완성한 해이자,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당도한 해다. 이후 스페인은 약 200년간 유럽 최강국으로 번영을 누렸다. 신대륙에서 쏟아져 들어온 금과 은으로 당시 영국·프랑스가 넘볼 수 없는 부를 축적했다.신대륙 발견은 스페인에는 축복이었으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대재앙의 시작이었다. 콜럼버스를 비롯해 코르테스, 피사로 등이 잇달아 진출해 원주민을 상대로 학살과 약탈을 자행했다. 아즈텍 마야 잉카 문명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스페인 군대는 총과 대포 이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치명적 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유럽인들이 신대륙에 발을 딛자 천연두 수두 콜레라 페스트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홍역 백일해 등의 질병이 마치 지옥문이 열리듯 쏟아져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