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생글기자

    자주독립 위해 청춘을 바친 '영웅' 안중근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영화 ‘영웅’이 누적 관객 수 300만 명을 넘겼다. 그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일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삶에 다시 주목해보고자 한다.안중근은 의병 활동을 하던 중 1903년 동의단지회를 결성하고 무명지(넷째 손가락)를 잘라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을 쓴 단지동맹을 맺었다.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다짐한 것이다.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지배권을 놓고 러시아와 협상하기 위해 하얼빈을 방문하는 때에 맞춰 안중근은 거사를 결심한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경 하얼빈역에 총성이 울리고 이토 히로부미는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안중근은 현장에서 체포돼 뤼순감옥에 수감됐다가 이듬해인 1910년 2월 14일 일본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안중근은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까지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한 자신의 의지가 약해질까 두려워했다. 그가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준 사람이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였다. 안중근은 법정에서도 그 누구보다 당당했다. 감옥에서는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며 자신의 삶과 사상을 정리했다. 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독립을 향한 의지와 꺾이지 않는 기개는 후손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영웅’은 자주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쳤던 우리의 영웅, 안중근 의사를 다시 한번 기억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김은솔 생글기자(용인외대부고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