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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기타

    국가의 추락·추격은 현재진행형…경제시스템이 차이 낳는다

    ‘자력갱생’ ‘우리민족끼리’. 이 단어는 아마 북한으로 인해 우리가 굉장히 익숙한 말일 듯싶다. 자력갱생(自力更生)이란 말은 자신의 힘으로 생존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1960년대 북한이 자력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운영해가겠다는 정책기조로, 북한은 현재까지도 이 자력갱생을 최고지도자의 신년사에서 쓰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역시 북한이 지금도 즐겨 쓰는 문구며, 북한의 선전용 웹 사이트의 이름이기도 하다. 급격한 추락과 추격을 경험한 국가들이 ‘자력갱생’과 ‘우리(민족)끼리’라는 두 단어는 놀랍게도 1962년부터 1988년까지 26년간 미얀마의 ‘버마식 사회주의’의 국가적 모토(National motto)이기도 하다. 이 기간 미얀마는 최악의 경제적인 추락을 경험하게 된다. 한때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이자, 동남아시아 최고의 부유한 국가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었던 미얀마는 결과적으로 세계의 최빈국이 되고 만다. 미얀마는 2012년이 돼서야 시장경제와 전면개방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경제적 추격을 하고 있다. 미얀마는 시장경제체제 도입 이후 연평균 7~8%의 경제성장을 하고 있고, 필자가 미얀마를 처음 방문했던 2013년의 경제지표 및 최대 도시 양곤의 시내 모습과 6년이 지난 2019년 다시 방문한 미얀마의 경제 규모와 양곤 중심부의 도심 풍경은 놀랄 만큼 달라져 있었다.오랜 전쟁 끝에 1975년 통일을 이룬 베트남은 아이러니하게도 종전 이후 10년 동안 철저한 경제적 추락을 경험하게 된다.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 국유화, 화폐개혁이 주요한 원인이고 이로 인해 베트남의 생산성은 크게 악화된다. 전 분야의 생산성 저하는 1년 3모작의 광대하고 비옥한 토지

  • 경제 기타

    경제활력 넘치는 호찌민…베트남 실용주의의 상징

    호찌민은 20세기 베트남전쟁을 승리로 이끈 베트남의 초대 국가 주석인 국부(國父)의 이름이다. 이 지도자의 이름을 딴 베트남 남단에 위치한 호찌민시(Ho Chi Minh City)는 인구 약 900만 명이 거주하는 베트남 남부의 최대 도시이다. 수도인 하노이에서 약 1700㎞ 떨어져 있다. 서울과 부산의 거리가 325㎞이니, 서울~부산 거리의 약 5배이고 비행기로만 약 2시간10분이 걸린다. 베트남은 매우 긴 나라다.(3) 베트남 경제중심지 호찌민베트남 국부의 이름을 딴 도시호찌민시의 과거 이름은 사이공이고, 여전히 사이공이라는 명칭이 곳곳에 남아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나, 한국의 쌀국수 음식점에도 사이공이란 명칭을 종종 쓰기 때문에 우리는 사이공이라는 명칭에 더 친숙할 수도 있다. 호찌민시 안에서도 사이공이란 이름을 현재에도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다. 호찌민시의 기차역 명칭도 사이공역이고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맥주의 브랜드 네임도 ‘사이공맥주’다. 그리고 호찌민시의 유명 호텔 중의 하나가 된 한국계 호텔의 명칭도 ‘롯데 레전드 호텔 사이공’이다.호찌민시는 16세기까지는 캄보디아 영토였다가 이후 베트남이 이 도시를 포함한 주변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베트남 영토가 된다. 한참 시간이 흐른 1858년 베트남과 프랑스 간 전쟁 때 이 도시는 프랑스에 의해 점령되기도 하다가, 1862년 베트남·프랑스 전쟁의 종전 후부터 1945년까지 오랜 기간 프랑스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된다. 현재에도 호찌민시에 프랑스식 건축물과 유명 바케트집이 많은 이유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물러간 이후에는 남베트남의 수도가 된다.1인당 GDP 베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