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교양 기타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완행열차허영자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천천히 아주 천천히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허영자 : 1938년 경남 함양 태생.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196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가슴엔 듯 눈엔 듯>, <친전>, <조용한 슬픔>, <기타를 치는 집시의 노래>, <은의 무게만큼>, <투명에 대하여>, <마리아 막달라> 등 출간. 월탄문학상, 편운문학상, 목월문학상, 허난설헌문학상 등 수상.열차는 기나긴 철로 위를 달리지만 언젠가는 종착역에 다다릅니다. 우리 인생길도 그렇지요. 그 여정에는 급행도 있고 완행도 있습니다. 세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급하게 달릴 때는 주변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속도를 늦추면 비로소 삶의 단면들이 하나씩 보입니다.허영자 시인의 인생 여로(旅路)도 그랬습니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일제강점기였죠. 칼을 찬 일본 순사가 말을 타고 나타나면 아이들은 기겁해서 숨었습니다. 어른들은 놋그릇 공출 때문에 식기들을 땅속에 묻기 바빴지요.시인의 고향인 경남 함양 손곡리는 지리산을 끼고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광복 이후 좌우 대립과 한국전쟁 때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숱한 비극이 이어졌지요. 손곡리는 전쟁 통에 마을 전체가 불에 타 없어졌고, 나중에 장항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완행길의 ‘누비질’과 ‘홈질’ 원리유년 시절부터 숨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