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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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집 한 채 값을 훌쩍 뛰어넘던 당나라 시대 모란꽃…'네덜란드 튤립'보다 900년이나 앞섰던 투기 광풍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꽃을 사다(買花)’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장안의 봄이 저물려 하니(帝城春欲暮)시끌벅적 마차들이 다닌다(喧喧車馬度)모두들 모란의 계절이 왔다며(共道牡丹時)줄지어 꽃을 사러 간다(相隨買花去)귀천 따라 일정한 값이 없으니(貴賤無常價)낸 돈만큼 꽃송이를 보게 될 터(酬値看花數)(…)집집마다 따라들 하니 풍속이 되어(家家習爲俗)사람마다 정신없이 열중해 깨닫지 못한다(人人迷不悟)어느 늙은 시골 농부가(有一田舍翁)우연히 꽃 파는 곳에 왔다가(偶來買花處)고개 떨구고 홀로 길게 탄식한다(低頭獨長嘆)그 한숨을 알아채는 이 아무도 없다(此嘆無人諭)한 포기 짙은색 모란꽃이(一叢深色花)중농 열 집의 세금이라도(十戶中人賦)시가 묘사하는 것처럼 전성기 당나라 장안에선 오늘날 닷컴 열풍, 부동산 광풍, 펀드 열풍에 버금가는 모란 광풍이 불었다. 모란은 꽃으로 정원과 사원, 각종 연못과 공공기관을 장식하길 좋아하던 당나라 사람들이 최고로 친 꽃이다. 당대 시인 유우석(劉禹錫)은 “연못의 연꽃은 수수하긴 하지만 모란에 비해선 아취가 적다”며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인 모란이 만개할 때 장안 전체가 들뜰 수밖에 없다”고 흥얼거렸다. 부의 상징인 모란꽃모란꽃(사진)에 대한 애착은 수나라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수와 당 왕실에서 시작돼 민간으로 빠르게 번졌다. 화려함을 좋아하는 장안의 귀족들은 모란을 앞다퉈 사들였다. 연꽃이 불교와 관련된 정신적 고귀함의 상징이었다면 빨간색과 자주색 모란은 부의 상징이었다. 자연스럽게 “여러 꽃을 보았지만, 모란보다 아름다운 건 없다”거나 “오만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