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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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공주 출가시켜 주변국 통제하던 중국…위구르 등도 지참금 잇속 최대한 챙겨
(왕)소군이 옥구슬 안장을 건드리듯(昭君拂玉鞍)말에 오르니 붉은 두 뺨엔 눈물 흐르네(上馬啼紅頰)오늘은 한나라 궁인이지만(今日漢宮人)내일은 오랑캐의 첩이라네(明朝胡地妾)- 이백, 「왕소군(王昭君)」화번공주(和蕃公主). 전통시대 중국에서 정략적인 이유로 이민족 군주에게 출가시킨 공주를 지칭하는 말이다. 물론 중국 천자의 딸이 직접 보내진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역모에 얽힌 황실 종친의 여식이나 먼 친인척, 제왕의 여식 혹은 황실 관계자 등이 주로 ‘대타’로 차출됐다. 예를 들어 당 현종 때인 717년 거란의 왕 이실활(李失活)에게 동평왕(東平王)의 외손 양씨(楊氏)를 영락공주(永樂公主)로 삼아 예물 6000단과 함께 시집보냈다. 726년에는 거란 송막왕(松漠王) 이소고(李邵固)에게 현종의 생질 진씨(陳氏)를 동화공주(東華公主)로 삼아 처로 줬다. 같은 해 요락왕(饒樂王) 이노소(李魯蘇)를 봉성왕(奉誠王)으로 삼고 성안공주(成安公主)의 딸 위씨(韋氏)를 동광공주(東光公主)로 삼아 혼인을 맺었다. 이민족과 화친하기 위해 보내진 ‘화번공주’중국 역사에서 이민족 군장에게 황실과 관련된 여성을 보내는 것은 한(漢)대에 시작됐다. 당(唐)나라 시기에 이르면 돌궐, 위구르, 토번 등을 대상으로 이 같은 형태가 반복됐다. 당나라 시대에는 이민족에게 보내지는 이들 여성을 두고 화번공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민족인 번족(蕃族)과 화친하고, 번족을 회유하기 위함이라는 뜻을 공주의 명칭에 담은 것이다. 주변 민족 입장에서도 중국의 공주를 얻어 당나라와 관계를 맺는 것은 국내외에 권위를 과시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구당서(舊唐書)》「토번전」에는 “토번의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