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학파
-
경제 기타
'임금의 경직성' 두고 경제 이해방식 서로 달라
거시경제이론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서는 거시경제학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학파는 학문적 견해가 비슷한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하는 용어다. 시장경제에 대한 연구와 달리 국가경제가 작동하는 모습에 대한 연구에서는 견해를 서로 다른 학파가 대립하고 있다. 국가경제의 작동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한 나라의 총생산량이 결정되는 원리다. 이와 관련해 어느 요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고전학파와 케인스학파가 완전히 다른 시각을 보인다. 거시경제이론을 공부하는데 두 학파가 있다고 하는 것은, 어느 한쪽 의견만 맞고 다른 학파의 의견이 틀린다는 것이 아니므로 두 학파가 국가경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각각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노동의 수요와 공급에 변화가 있을 경우 시장에서 결정되는 균형 임금이 얼마나 신축적으로 변화하는지에 대한 입장이 두 학파를 구분하는 가장 근본적 요인이다. 노동시장뿐 아니라 모든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변화가 생기면 임금이나 가격이 즉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변화와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균형으로 수렴하게 된다. 특히 노동시장의 경우 새로운 균형 임금이 나타나기까지 다른 시장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 케인스학파의 견해다. 따라서 케인스학파는 임금이 경직적이어서 균형 임금으로 쉽게 도달되지 않는 시기를 ‘단기’로, 임금의 경직성이 사라지는 시기를 ‘장기’로 구분하며, 단기의 국가경제 모습과 장기의 국가경제 모습을 따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시장경제에 관해 설명하면서도 단기와 장기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미시경제이론이
-
커버스토리
고전학파·케인스학파·오스트리아학파…경제 성장을 달성하는 방법·철학이 다르죠
경제학자들은 경제학파를 나눌 때 출발점을 18세기 고전학파로 삼습니다. 비록 경제학(economics)이라는 말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폰의 ‘오이코노미코스(Oikonomikos: 가정 살림 관리)’에서 오긴 했지만,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진 않죠. 그 시대엔 경제학 같은 사회과학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대의 대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조차 경제학에 대해 언급한 게 거의 없죠.교회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 중세 봉건시대에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인간과 사회가 교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획일적인 체제였고, 소위 물질세계를 소홀히 다뤘기 때문에 소유, 생산, 상업을 기반으로 한 경제는 매우 낮은 단계에 머물렀더랍니다.르네상스 시대(15세기 중반~17세기 초)를 지나고 새로운 패러다임(인식 틀)이 생기면서 경제학은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17세기 후반 계몽주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말하는 사회계약설이 등장했고, 신(神)을 넘어 인간과 이성을 존중하는 인본주의가 생겼고, 실험과 이론을 중시하는 과학이 꽃피면서 철학자와 사상가들은 삶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죠.18세기 우리는 고전학파를 만나게 됩니다. 1790년대부터 187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린 학파입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입니다. 산업혁명으로 생산·거래·인구·국부(國富)가 증가하자, 고전학파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고전학파는 “재화의 가치는 생산에 투입된 노동량에 비례한다”고 봤습니다. 노동가치설이라는 거죠. 고전학파는 인구 증가를 위험 요소로 봤어요. 토
-
테샛 공부합시다
대규모 재정지출을 의미하는 '뉴딜'···정부의 역할과 범위는?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부터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기침체까지 정부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커지는 시기가 있다. 경기 불황이 심화되면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인 불황 타개책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대규모 재정 지출을 동반할 때 이를 ‘뉴딜(New Dea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근에는 재생에너지와 관련한 대규모 재정지출사업인 그린뉴딜과 같이 정책 명칭을 붙여 이름짓기도 한다. 뉴딜이란 과연 무엇일까? 대공황과 뉴딜 정책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주가가 대폭락하면서 시작된 미국의 대공황은 미국 사회, 나아가 세계를 큰 혼란에 빠뜨렸다. 주가가 폭락하면서 금융기관들도 잇따라 도산하였다. 기업들은 무너졌고 실업자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거리에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사람들과 은행에 맡겨두었던 돈을 찾기 위한 사람들이 넘쳐나면서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기존의 경제학은 불황이 일시적으로 나타나더라도 시장의 조정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강하였다. 하지만 대공황이 발생하면서 이러한 믿음이 깨져버렸다. 이때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제시한 ‘유효수요 이론’이 대공황에 대응하는 학문적 토대가 되었다. 이전 경제학에서는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Say’s law)’이 주된 이론적 토대였다. 기업이 투자 및 생산을 늘리면 고용과 소득이 늘어 수요 또한 늘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케인스는 대공황 시기에 부족한 것은 공급이 아니라 수요라고 보았다. Y(총수요)=C(소비)+I(투자)+G(정부지출) 등식에서 불황기 소비와 투자가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