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업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만주 일대에서 발견된 화려한 옥 공예품과 철 가공품…원조선의 산업과 문화는 춘추전국시대 못지않았다
한국은 1962년 수출 1억달러를 돌파했다. 서울 남대문 옆 대한상공회의소 옥상의 전광판에 뜬 숫자를 확인하며 등교하던 까까머리 학창시절이 엊그제 같다. 500년간 농사만 짓던 사회가 공업과 무역을 국가 전략으로 택했다. 그 결과 2019년에는 무역액 1조달러를 넘어 세계 무역 8강,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됐다.현생 인류는 초기부터 상업을 했고, 곧 원거리 무역을 했다. 3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 유적지(유럽의 중심부)에서 지중해나 대서양 연안으로부터 가져온 조개껍데기가 발견됐다. 뉴기니와 북부 뉴아일랜드섬에 살던 사피엔스는 칼날을 대신한 흑요석을 바다 건너 400㎞ 떨어진 뉴브리튼섬에서 가져왔다. 발트해의 호박, 지중해의 조개껍데기가 1500㎞ 내륙으로 들어간 홍적세 크로마뇽인 유적지에서 발견됐다(재러드 다이아몬드 《어제까지의 세계》). 그렇다면 만주와 화북 일대, 동아지중해권에서 근거리 무역이 활발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고대 중국 능가한 원조선의 산업한국 사람들은 중국의 주나라나 춘추전국시대라 하면 엄청나게 발전한 사회로 안다. 반면 기원전 10세기 전후의 우리는 원시적인 수준이었으며, 산업도 외국 무역도 없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원조선은 제련술과 제철술 등 금속산업과 요업(세라믹)이 매우 발달해 뛰어나고 화려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기술력이 발전했고 지식과 경험을 활용한 실용과학 수준이 뛰어났던 결과다. 당연히 다른 분야 산업들도 동반 발전했다.광업도 발달했다. 원조선의 영토였던 만주와 한반도 북부 지역이 다양한 자원의 보고였기 때문이다. 1970년까지 북한 경제가 우리를 앞선 것은 일본이 건설한 중화학공업 잔재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단순 주조품보다 뛰어난 비파형 동검·청동거울…원조선의 정교한 합금·주조 기술 당대 최고였다
한국은 많은 나라가 선망하는 국가다. ‘한류’는 선진국에서도 인기몰이 중이다. 50년 만에 세계 최빈국을 벗어나 산업화와 부국강병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산업이 발전하고,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나라들이 있었다. 하지만 ‘고대 산업’에 대한 오해,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불신과 저평가, 역사학자들의 편협함 때문에 이를 잘 알지 못한다. 베이징 근처에서도 발견된 원조선 유물들원조선은 어떤 종류의 산업이 발달했으며, 기술력은 어느 수준이었을까? 농업과 어업, 임업, 목축업 등 1차 산업과 성을 쌓고 도로를 닦고 거대한 고분 및 고인돌을 만드는 토목업, 조선업 등은 국가의 기간산업이다. 그런데 기술력의 정수, 응용 범위의 확장, 기타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 등을 고려하면 화공(化工)을 이용한 요업(세라믹)과 금속을 이용한 군수산업, 제사산업이 핵심이었다.원조선 전기는 청동기 문화가 발달한 시기였다. 중국 랴오닝성 다롄(大連) 근처의 강상무덤(崗上墓)과 루상무덤(樓上墓), 요하(遼河) 동쪽 지방인 요동의 정가와자 무덤들(선양 정가와자에 있는 유적), 요서의 십이대영자 무덤 등에서는 청동 단검, 청동 도끼, 청동 끌, 청동 화살촉, 수레 부속품, 마구류, 단추 등 각종 청동 제품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그 가운데 원조선의 금속산업과 기술력을 알려주는 유물은 상징성이 강하고, 기능성이 높으며, 난도가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비파형 동검(고조선식 동검 또는 요녕식 동검)과 청동거울(잔무늬 거울, 거친무늬 거울)이다.고대사회에서 칼은 무기로 기능했고 정치력을 의미했으며, 상징성도 강했다. 특히 비파형 동검은 특별한 형태와 표방한 논리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