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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은 왜 '두 번 피는' 꽃일까 [고두현의 아침 시편]

    동백꽃이수복동백꽃은훗시집간 순아 누님이매양 보며 울던 꽃눈 녹은 양지쪽에 피어집에 온 누님을 울리던 꽃.홍치마에 지던하늘 비친 눈물도가녈피고 씁쓸하던 누님의 한숨도오늘토록 나는 몰라 …울어야던 누님도 누님을 울리던 동백꽃도나는 몰라오늘토록 나는 몰라 …지금은 하이얀 촉루가 된누님이 매양 보며 울던 꽃빨간 동백꽃.* 이수복(1924~1986) : 전남 함평 출생.1954년 서정주 추천으로 등단. 시집 <봄비> 출간.동백나무는 다산(多産)의 상징이지요. 열매가 풍성하게 맺혀서 그렇답니다. 동백은 추위 속에서 망울을 터뜨리는 꽃이어서인지 꽃잎도 두껍습니다. 그 속에 향기 대신 꿀을 잔뜩 머금고 있지요.‘훗시집간 누님’의 홍치마에 지던…추위 속에 피는 동백의 꽃가루는 누가 옮기는 걸까요? 뜻밖에도 벌·나비 등의 곤충이 아니라 텃새입니다. 남부 해안이나 섬에 서식하는 동박새가 그 주인공이죠. 꿀을 유난히 좋아하는 동박새는 귀엽고 앙증맞은 몸으로 동백나무 꽃가루를 이리저리 옮기며 중매쟁이 노릇을 합니다.남부 지방에서는 혼례식 초례상에 송죽 대신 동백나무를 주로 꽂았습니다. 사철 푸른 동백잎처럼 변하지 않고 오래 살며 풍요롭기를 바라는 뜻에서였지요. 시집가고 장가갈 때 아이들이 동백나무 가지에 오색종이를 붙여 흔드는 풍습도 이런 축복의 뜻을 담은 것입니다.이수복 시 ‘동백꽃’에는 축복보다 눈물이 먼저 아롱거립니다. 친정 부모 형제와 정든 집을 떠나 출가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그 속에 녹아 있지요. 그 이유는 바로 ‘훗시집’에 있습니다.처녀가 총각과 결혼하는 게 아니라 남의 집 후처나 재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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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신혼 치마에 먹물 자국이 아직… [고두현의 아침 시편]

    회근시(回詩)정약용육십 년 세월, 눈 깜빡할 새 날아갔으나복사꽃 무성한 봄빛은 신혼 때 같구려.나고 죽는 것과 헤어지는 것이 늙기를 재촉하지만슬픔은 짧았고 기쁨은 길었으니 은혜에 감사하오.이 밤 목란사 노래 소리 더욱 좋고그 옛날 치마에 먹 자국이 아직 남아 있소.나뉘었다 다시 합하는 것이 참으로 우리 모습이니한 쌍의 표주박을 남겨 후손에게 전합시다.* 정약용(1762~1836) : 조선 후기 학자, 시인.다산(茶山) 정약용이 결혼 60주년을 기념해 지은 시입니다. 60회 기념일은 1836년 4월 7일(음력 2월 22일). 15세에 부인 홍 씨와 결혼한 지 딱 60년이 되는 날이죠. 하지만 회혼 잔치를 베풀려던 그날 아침, 안타깝게도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74세의 파란만장한 삶이 잔칫상 사이로 잦아들었지요.이 시는 그가 죽기 사흘 전에 쓴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생애 마지막 작품이군요. 이로부터 2년 후에 부인은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 시에 나오는 부인의 ‘그 옛날 치마’란 조선 시대 여인들이 입던 하피(霞)를 말하지요.아내 치마폭에 한 자씩 새긴 <하피첩>다산은 유배 생활을 오래했습니다. 전남 강진에서만 17년을 지냈지요. 귀양살이 10년째가 되던 해, 부인이 시집올 때 입었던 다홍치마 다섯 폭을 인편으로 보내왔습니다. 젊은 날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남편에 대한 정을 치마에 담아 전하고 싶었을까요.다산은 그런 뜻을 헤아려 치마를 70여 장의 서책 크기로 자르고 다듬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B5 용지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지요. 그 치마폭에 종이를 붙여 빳빳하게 만든 다음, 먹을 찍어 한 자 한 자 정성껏 글을 썼습니다.이렇게 해서 완성한 것이 그 유명한 <하피첩(霞帖, 노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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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 경주역에서 처음 만난 목월과 지훈 [고두현의 아침 시편]

    완화삼 - 목월에게조지훈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구름 흘러가는물길은 칠백 리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이 밤 자면 저 마을에꽃은 지리라.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조지훈(1920~1968): 경북 영양 출생. 1939년 <문장(文章)>으로 등단. 시집 <풀잎단장> 등.1942년 봄이었습니다. 2년 전 문예지 <문장>으로 등단한 청년 시인 조지훈이 같은 잡지로 데뷔한 박목월에게 편지를 보냈지요. 얼굴은 모르지만 잡지에 실린 주소를 찾아 문우(文友)의 근황을 묻고 언제 한번 보자고 썼습니다. 며칠 뒤 목월의 답장이 도착했죠.“경주박물관에는 지금 노오란 산수유 꽃이 한창입니다. 늘 외롭게 가서 보곤 하던 싸느란 옥적(玉笛)을 마음속 임과 함께 볼 수 있는 감격을 지금부터 기다리겠습니다.”한지에 이름 써서 들고 기다린 목월지훈은 그길로 집을 나섰습니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경주 건천역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의 해거름 무렵이었지요. 한가로운 시골역의 플랫폼에 내리자 한지에 자기 이름을 써서 들고 선 목월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그때 지훈은 스물둘, 목월은 스물일곱 살이었죠. 두 젊은이는 경주 시내 여관방에서 문학과 삶을 얘기하며 거의 매일 밤을 새다시피 했습니다. 낮에는 목월의 안내로 불국사며 석굴암이며 왕릉 숲길을 거닐었지요.그렇게 열흘 이상 어울리고서야 둘은 헤어졌습니다. 지훈은 고향인 경북 영양의 옛집에 들러 목월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며 목월을 위해 쓴 시 한 편을 동봉했지요. 그 시가 바로 ‘목월에게’라는 부제를 단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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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0년 전 "내 속에 당신 있고 당신 속에…" [고두현의 아침 시편]

    아농사(我詞) 관도승당신과 나, 너무나 정이 깊어 불같이 뜨거웠지.한 줌 진흙으로 당신 하나 빚고 나 하나 만드네.우리 둘 함께 부수어 물에다 섞어서는다시 당신을 빚고 나를 만드네.내 속에 당신 있고 당신 속에 내가 있네.살아서는 한 이불 덮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네.* 관도승(管道升, 1262~1319): 원나라 때 여성 시인이자 화가.‘파리의 연인’이라는 TV 드라마에 나온 명대사 기억하시나요? 이동건이 김정은의 손을 자기 가슴에 얹게 하고 “이 안에 너 있다”라고 말하는 장면. 이 한마디가 장안의 화제였죠. 오늘은 그 대사의 원조 격인 700년 전의 달콤쌉싸름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아농사’라는 시를 쓴 관도승(管道升, 1262~1319)은 원나라 때의 여성 화가이자 시인입니다. 대나무 그림을 잘 그려 ‘묵죽(墨竹)의 명인’으로 유명했죠. 당대 최고 서예가 조맹부(趙孟)의 부인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늦게야 결혼했는데 서로 끔찍이 아껴서 금실이 아주 좋았지요. 짧은 시 한 편으로 마음 되돌려그런데 중년에 들어 조맹부에게 여자가 생겼습니다. 지금은 말도 안 되지만, 당시 사대부는 대부분 첩을 얻었기에 대수롭잖게 여겨도 그만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뛰어난 인생 도반을 둔 조맹부로서는 차마 아내에게 그 말을 꺼내기 어려웠지요. 그래서 사(詞)를 한 편 지어 넌지시 건넸습니다.“나는 학사고 당신은 부인이오. 왕(王)학사에게 도엽(桃葉) 도근(桃根)이 있고, 소(蘇)학사에게는 조운(朝雲) 모운(暮雲)이 있다는 소리를 어찌 못 들었겠소? 나는 곧 몇 명의 오희(吳姬) 월녀(越女)를 얻을 것이오. 당신은 이미 나이가 넘었으니 나의 심신을 독점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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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문학상 자양분 된 사랑의 상처 [고두현의 아침 시편]

    하늘의 융단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금빛 은빛 무늬로 수놓은하늘의 융단이,밤과 낮과 어스름의푸르고 침침하고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그대의 발밑에 깔아드리련만나 가난하여 오직 꿈만을 가졌기에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았으니사뿐히 걸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 아일랜드 시인 겸 극작가.아일랜드의 국민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사랑 시입니다. 예이츠가 첫 시집으로 막 이름을 날리던 1889년 어느 봄날, 스물네 살 청년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든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비밀결사 조직 지도자의 소개장을 갖고 나타난 젊은 여성 모드 곤이었지요.곤은 예이츠의 아버지 앞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싸우자며 열변을 토했습니다. 첫눈에 반한 예이츠는 곤을 위해 무엇이든 하리라고 다짐했죠. 그는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 단체에 가입했습니다. 곤이 좋아할 만한 사회활동에 주력하면서 시풍도 탐미적인 것에서 민족주의 성향으로 바꿨습니다.‘독립군 女전사’에게 두 번이나 청혼그런 그에게 곤도 서서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인에 대한 존경일 뿐 사랑은 아니었던가 봅니다. 뛰어난 대중 연설가이자 여성 혁명가인 곤에게 사사로운 연정은 사치에 불과했지요. 그런데도 예이츠의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그렇게 10년이 지난 뒤 그는 용기를 내 정식으로 청혼했지요. 곤은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이후 몇 번이나 계속된 구애도 허사였죠. 곤은 결국 아일랜드 독립군 장교와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그 장교는 1916년 대규모 ‘부활절 봉기’에 참가했다가 영국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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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서 내가 사랑에 빠질 줄은… [고두현의 아침 시편]

    내가 라이오네스로 떠났을 때토머스 하디백 마일 밖 라이오네스로내가 떠났을 때나뭇가지 위에 서리는 내리고별빛이 외로운 나를 비췄지.백 마일 밖 라이오네스로내가 떠났을 때.라이오네스에 내가 머물 때거기서 무슨 일이 생길지어떤 예언자도 감히 말 못 하고가장 현명한 마법사도 짐작 못 했지.라이오네스에 내가 머물 때거기서 무슨 일이 생길지.내가 라이오네스에서 돌아왔을 때눈에 마법을 띠고 돌아왔을 때모두 말 없는 예감으로 눈여겨보았지.나의 드물고 깊이 모를 광채를내가 라이오네스에서 돌아왔을 때눈에 마법을 띠고 돌아왔을 때!* 토머스 하디(1840~1928): 소설 <테스>로 유명한 영국 작가이자 뛰어난 시인, 극작가.토머스 하디가 남긴 연애시입니다. 그는 영국 남부에 있는 도체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철도도 들어오지 않는 외진 곳이었지요. 아버지는 석공이었고, 어머니는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어린 시절의 하디는 내성적이고 몸이 약했습니다. 그가 학교에서 받은 교육은 약 8년뿐이었죠. 16세 때 건축사무소 수습공으로 들어간 뒤, 건축 업무와 소설·시 쓰기를 병행했습니다.건축기사와 귀족 딸의 은밀한 만남그의 시 중 가장 달콤한 것으로 꼽히는 ‘내가 라이오네스로 떠났을 때’는 서른 살 때의 사랑을 그린 것입니다. 그때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그해 봄 하디는 교회 건물을 수리하기 위해 콘월주에 있는 세인트줄리엇으로 파견됐습니다. 그곳 목사관에 에마 기퍼드라는 처녀가 있었죠. 성격이 활발하고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아가씨였습니다.그녀는 하디의 창작에 아주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둘은 곧 사랑에 빠졌지요. 그녀는 귀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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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의 주행거리는 얼마나 될까? [고두현의 아침 시편]

    인생                          유자효 늦가을 청량리할머니 둘버스를 기다리며 속삭인다"꼭 신설동에서 청량리 온 것만 하지?"* 유자효 : 1947년 부산 출생.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아직>, <심장과 뼈>, <사랑하는 아들아>, <성자가 된 개>, <내 영혼은>, <떠남>, <짧은 사랑>, <꼭> 등 출간. 정지용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신설동에서 청량리까지는 시내버스로 네 정거장, 약 15분 거리입니다. 지하철로는 2구간 4분,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 거리죠. 걸어가도 30분이면 됩니다. 이 짧은 거리가 두 할머니에게는 여태까지 걸어온 인생의 주행거리입니다.이 시는 속도와 시간, 거리와 공간의 의미를 사람의 일생으로 응축해 보여줍니다. 이런 장면을 포착해서 순간 스케치처럼 보여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시인이 보여주는 풍경의 한편에는 ‘느린 속도’와 ‘멈춘 걸음’과 ‘생의 비의’가 함께 있습니다.“속도를 늦추자 세상이 넓어졌다”그 속에서 깊은 성찰의 꽃이 피어납니다. 유자효 시인은 평생 시인과 방송기자라는 두 길을 바쁘게 걸어왔습니다. 부산고등학교 문예반 시절 진해군항제 백일장 등의 장원을 휩쓸고, 대학 시절 가정교사로 바쁜 중에도 스물한 살 때 신춘문예로 등단했습니다. 그 뒤로는 기자가 되어 KBS 파리 특파원과 SBS 정치부장, 보도제작국장, 논설위원실장 등으로 종횡무진했죠.은퇴 후 “어릴 때부터 걷고 싶었던 시인과 기자의 두 길”을 ‘한 길’에서 만나게 되면서 그는 더 내밀한 세상의 풍경을 들여다보기 시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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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업(生業)이 직업(職業)보다 숭고한 이유 [고두현의 아침 시편]

    생업                                윤효종로6가 횡단보도원단두루마리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이숨을 고르고 있었다.신호총이 울렸다.장애물을 요리조리 헤치며동대문시장 안 저마다의 결승선을 향해순식간에 사라졌다.좀처럼 등위를 매길 수 없었다.모두 1등이었다.* 윤효: 1956년 충남 논산 출생. 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물결> <얼음새꽃> <햇살방석> <참말> <배꼽> 등 출간. 편운문학상, 영랑시문학상, 풀꽃문학상 등 수상.벌써 12월 말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 짧으면서도 강렬한 시 ‘생업’을 소개합니다.생(生)은 윤효 시인의 문학적 화두 중 하나입니다. 생이란 ‘생명’과 ‘목숨’의 비밀을 여는 열쇳말이죠. 나무로 치자면 가장 큰 가지, 풀꽃으로 치면 가장 실한 줄기가 곧 생입니다. 갑골문에서 ‘생(生)’은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날 생(生)이고, 낳을 산(産)입니다. 이 글자는 살 활(活)과 있을 존(存)의 뜻까지 아우르지요.생업(生業)은 목숨 걸고 집중하는 일이 가운데 생업(生業)은 우리가 목숨을 영위하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집중하는 일입니다. 각자 맡은 일을 하는 직업(職業)과 다르죠. 윤효 시인은 분초를 다투며 원단을 실어 나르는 시장통 오토바이 짐꾼들을 보면서 ‘생업’이라는 시를 썼습니다.이 시에는 ‘숨을 고르고’ 잔뜩 긴장해 있다가 ‘땅’ 하는 총소리를 듣자마자 튀어 나가는 달리기 선수들의 속도가 응축돼 있습니다. ‘장애물을 요리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