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이 국가를 살 찌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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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이 국가를 살 찌우는 이유
대한민국이 지난달 15일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서명했다. RCEP은 한국 호주 중국 일본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등 15개국이 참여하며 세계 인구의 약 30%인 22억 명의 시장을 포괄한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0%에 해당하는 26조2000억달러 규모의 시장이 활짝 열린다는 점에서 수출과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이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RCEP은 중국이 주도하는 지역협력체지만 한국도 협상 마무리 단계에 조정자 역할을 맡는 등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무역은 20세기 후반 이후 인류에 경제·산업적 발달과 풍요를 가져다준 체제다. 근세 이후 서구 국가들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보호무역에 골몰하면서 국가 간 충돌이 수시로 빚어졌고,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자유무역이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된 결과다.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자유무역이 보호무역보다 모두에게 이롭다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비교우위(比較優位)란 A국이 모든 상품에서 B국보다 절대우위에 있지만 각각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제품(비교우위가 있는)에 주력해 서로 교환하면 두 국가 모두 이익이 된다는 논리다.한국이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세계무역기구(WTO)로 대표되는 자유무역의 세계적 흐름에 적극 부응한 덕분이다. 한국은 WTO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장개방 정도를 더 높이기 위한 국가 혹은 지역 간 FTA에도 적극 참여해 세계적으로 FTA 체결 상위 국가로 부상하기도 했다.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대두된 ‘미국 우선주의’와 미국&mi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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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을 보장하는 방법 = 교환, 가난으로 가는 길 = 자급자족
‘번영의 징표는 교환을 늘리는 것이며, 가난의 징표는 자급자족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 말은 ‘혼자서 쌀농사를 하고, 밭농사를 하고, 모자를 만들고, 옷을 짓는 것보다 자신이 열심히 수확한 쌀을 밭작물, 모자, 옷과 교환하면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을 지녔다. 그래서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1723~1790)는 “인간은 교환하려는 성향을 지녔고, 이것 때문에 분업이 일어나 개인과 국가가 잘살게 된다”고 말했다. 개인 간 교환이 좋은 것이라면, 국가들끼리 교환, 즉 교역하면 어떨까? 국가를 살찌우는 방법인류 역사에서 국가가 성립된 이래로 국가들은 자국이 잘사는 방법을 연구했다.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중농주의, 중상주의, 경공업 우선주의, 중공업 우선주의, 자유무역주의, 보호무역주의, 이런 말도 따지고 보면 나름대로 국가를 잘살게 하는 주장들이다. 중농주의는 말 그대로 “국가의 근본은 농업”이라는 주장이다. 세 끼 다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았고 굶주림이 늘 존재했던 먼 과거, 농업은 중심 산업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해서 농업을 떠받친 시절이 있었다. 중상주의는 상업, 무역을 중시하는 주장이다. 역사 속 중상주의는 무역로가 개척되던 16세기부터 등장했다. 이때 중상주의는 ‘자기 나라 물건을 남의 나라로 많이 수출하고, 다른 나라 상품을 가능한 한 적게 수입한다’는 주의였다. 모든 나라가 이런 식이라면 중상주의는 오래가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전쟁도 불사했다.프랑스 루이 14세 때 중상주의가 실제로 문제를 일으켰다. 콜베르라는 프랑스 재상은 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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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 일군 자유무역…세계 78%가 한국의 경제영토
대한민국이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 되는 가난한 나라에서 현재 세계 10위권으로 올라선 것은 자유무역의 물결을 타고 수출주도형 경제체제를 구축한 덕분이다. 천연자원도 없고 축적된 자본도 없었지만 가발부터 시작해 신발, 섬유, 가전제품을 거쳐 자동차와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등을 수출하는 등 개방과 경쟁을 통해 우리의 경제력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세계 각국이 자유무역 확대에 나섰고 그 세계적 흐름에 한국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한강의 기적’을 일군 원동력이 됐다. 세계 GDP의 78%가 우리의 ‘경제영토’한국은 자유무역을 위한 국제규범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1967년 가입하면서 세계 통상 무대에 등장했다. GATT는 수입품에 관세를 매기는 방식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국가들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관세 장벽을 없애고 수출입 제한을 완화하자는 국제규약으로 1947년 출범했다. 미국과 유럽 국가 위주이고 공산품 개방이 주된 의제였던 GATT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바뀌었는데 이때 한국은 논의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현재 164개국이 참여하는 WTO는 농산물과 서비스 시장까지 포괄하는 개방을 강조할 뿐 아니라 국가간 무역분쟁이 발생하면 WTO에서 조정하는 등 GATT보다 강한 구속력을 가진 범세계적인 자유무역기구다. 하지만 국제통상에서 지식재산권 등 무역장벽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기에 이후로도 분야별 다자간 협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협력과 환경보호 등 의제를 담은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선진국과 개도국의 대립으로 2003년 결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