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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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의사 시인을 감동시킨 비누 두 장
비누 두 장김기준여리디 여린 당신의 허리춤에 긴 마취 침 놓고두려움에 떨고 있는 당신의 눈을 보며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손잡아주며괜찮아요괜찮아요내가 옆에 있잖아요그 순한 눈매에 맺혀 오는 투명한 이슬방울산고의 순간은 이토록 무섭고 외로운데난 그저 초록빛 수술복에 갇힌 마취의사일 뿐일까?사각사각 살을 찢는 무정한 가위소리꼭 잡은 우리 손에 힘 더 들어가고괜찮아요괜찮아요내가 옆에 있잖아요편히 감는 눈동자 속에 언뜻 스쳐 간 엄마의 모습몇 달 후 찾아와서 부끄러운 듯 내어놓은황토빛 비누 두 장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우리 아가 먹다 남은 초유로 만든 비누예요그때 손잡아 주시던 때알러지로 고생한다 하셨잖아요혼자 남은 연구실에서 한동안 말을 잊었네기어코 통곡되어 눈물, 콧물 다 쏟았네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내가 더 고맙습니다* 김기준 : 1963년 경남 김해 출생. 연세대 의대 졸업. 2016년 ‘월간 시’ 신인상.시집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과 사물에 대하여> 출간.제왕절개 수술 때 산모에게는 진정제를 투여하지 않는다. 배 속의 태아를 위해 척추마취만 한다. 수술 도중 산모의 긴장과 불안은 극에 달한다. 의료진의 다급한 목소리와 수술기구들이 부딪히는 소리, 피부와 살을 찢는 소리를 무방비 상태로 들어야 한다. 산모에게는 한없이 두려운 순간이다.그날도 그랬다. 그는 마취 침을 놓고 난 뒤 불안해하는 산모의 손을 꼭 잡아줬다. “괜찮아요. 내가 옆에 있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해보세요.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수술 침대에 누운 산모가 그의 손을 꾸욱 잡았다. 그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어느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