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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소월도 '진달래꽃' 3년 고쳤는데… [고두현의 아침 시편]

    왼쪽에 배치한 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월의 ‘진달래꽃’입니다. 100년 전인 1925년 12월 26일 출간한 생전의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에 실린 작품입니다.오른쪽에 배치한 시는 소월이 1922년 <개벽> 7월호에 처음 발표한 것입니다. 그가 시집을 준비하면서 3년 동안 얼마나 많은 퇴고를 했는지 알 수 있지요. 첫 연의 두 번째 행 ‘말없이’를 다음 행으로 옮겨서 리듬을 부드럽게 조율하고, ‘고히고히’는 ‘고이’로 줄였습니다. ‘한아름’도 ‘아름’으로 줄였지요. ‘그’와 ‘을’도 없앴습니다.3연은 더 많이 고쳤습니다. 앞부분에 나오는 ‘길’ ‘뿌리다’ ‘고히’가 다시 나오는 것을 수정하고, ‘마다’를 과감히 뺐습니다. ‘뿌려 놓흔 그 꽃’을 ‘놓인 그 꽃’으로 줄인 부분은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고히나 즈려밟고’를 ‘사뿐히 즈려밟고’로 바꾼 감각은 또 어떤가요.이런 노력 덕분에 ‘아름 따라’ ‘걸음걸음’같이 생생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소월이 이 시를 처음 발표한 1922년 7월은 그의 나이 만 19세였고, 시집을 출간한 1925년 12월은 만 22세였습니다. 이 3년 동안 그는 행을 바꾸고 말을 줄이고 다듬는 퇴고를 거듭했습니다.알다시피 ‘퇴고(推敲)’라는 말은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고사에서 나왔지요. 가도가 어느 날 친구 이응(李凝)의 은거지에 찾아갔다가 ‘이응의 유거에 쓰다(題李凝幽居)’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습니다.한가한 곳에 사니 이웃도 드물고 (閑居少鄰並)풀숲 길은 황폐한 뜰로 들어가네. (草徑入荒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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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사랑 연인과 이별한 김소월은… [고두현의 아침 시편]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김소월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그림자 같은 벗 하나이 내게 있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었겠습니까!오늘은 또 다시, 당신의 가슴속, 속모를 곳을울면서 나는 휘저어 버리고 떠납니다 그려.허수한 맘, 둘 곳 없는 심사에 쓰라린 가슴은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김소월(1902~1934): 평북 구성 태생.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시집 <진달래꽃>.오는 9월 8일은 시인 김소월이 탄생한 지 120년이 되는 날입니다.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가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에서 첫울음을 터뜨린 날이지요. 소월의 고향은 봄마다 산꽃이 지천으로 피는 아름다운 마을이었습니다.옥녀봉에서 만나 풀피리 불던 소녀할아버지가 개설한 독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한 그는 곧 남산소학교에 입학했지요. 같은 반 동네 소녀 오순과 친하게 된 뒤로는 옥녀봉 냉천터에서 자주 만나곤 했습니다. 바위에 올라 함께 피리를 불거나 노래를 불렀고, 숲 사이의 시냇가를 거닐기도 했죠. 어릴 때의 이런 추억은 훗날 ‘풀따기’라는 시에도 잘 묘사돼 있습니다.“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일부 발췌)오순은 의붓어미 밑에서 자랐는데 집이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 아래로 동생이 다섯 명이나 있었으니 더욱 궁핍했죠. 소월이 숙모에게 들은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시 ‘접동새’의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