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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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길잡이 기타
1등급 성적표보다 값진 내면의 성장, '위기지학'을 아시나요?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한자풀이爲: 할 위 己: 몸 기 之: 어조사 지 學: 배울 학출세나 명예가 아닌 인격 수양을 위한 학문 - <논어>위기지학배움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출세를 하거나 명예를 높이기 위한 학문이 있고, 스스로 인격 수양을 위해 배우는 학문도 있다. <논어> 헌문 편에는 이런 공자의 말씀이 있다. “옛날의 학자는 자기를 위해 배웠고, 오늘의 학자는 남을 위해 배운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남을 위해’라는 말은 남을 돕는 게 아니라 자기과시를 위한 것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위기지학(爲己之學)은 이기적이고 출세적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닦고 인격을 완성하기 위한 학문을 뜻한다. 반대 개념인 위인지학(爲人之學)은 남에게 보여주거나 명예·출세를 위한 학문을 가리킨다. 한자어에서 몸 기(己)는 자신을 뜻하고 사람 인(人)은 타인을 이른다. 나로 미루어 타인을 헤아린다는 추기급인(推己及人)에서 이 쓰임이 잘 나타난다.위기지학의 본질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인격의 변화다. 배움이 삶 속에 녹아들어 실제 행동과 태도가 달라져야 진정한 학문임을 이른다. 이를 위해 강조되는 것들이 있다.거경(居敬)은 늘 마음을 경건하고 깨어 있게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궁리(窮理)는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하는 자세다. 역행(力行)은 알게 된 것을 힘써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앎과 행함이 분리되지 않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은 위기지학의 핵심이다. 혼자 있을 때도 스스로 몸가짐을 삼간다는 신독(愼獨)도 배움의 바탕이다.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는 위기지학을 학문의 근본으로 삼았고, 왕양명은 지행합일을 강조하며 위기지학을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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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 사상으로 이상사회 건설하려 했지만…관념적이고 원론적인 선언·정강이 새로운 문제 낳아
1592년 음력 4월 13일 황혼이 깃들 무렵, 700척에 탄 일본 병력이 부산포에 상륙했다. 임진왜란의 시작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명가도(征明假道)’란 명분을 내걸고 20여만 명의 대군을 파견했다. 4일째 아침나절에야 상륙 소식을 접한 조선 조정은 병력을 파견했지만 신식 무기로 무장한 왜군은 불과 20여 일 만에 한양을 함락했다. 그사이 도망간 정부와 군대 대신 의병들이 전국에서 항전했고,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연승하면서 전쟁은 소강상태를 이뤘다. 이어 정유재란을 거쳐 7년간에 걸친 참혹한 전쟁은 막을 내렸다.국제정세를 보면 알 수 있었고, 일본이 명나라와 조선을 공격한다는 정보들이 유구국을 통해서도 알려졌다. 심지어 간첩으로 활동했고, 훗날 향도 역할을 한 승려 겐소는 일본이 침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기이하고 무능한 정부는 갑론을박 끝에 서인인 황윤길과 동인인 김성일을 정사와 부사로 일본에 파견해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공격 가능성을 놓고 정치적으로 반대파인 두 사람의 의견은 정반대였다.불가사의 한 일이다. 존재 의미를 물을 수밖에 없는 정부와 군대, 관리, 지식인 그리고 백성들이었다. 왜 조선은 국방을 무시해 생존을 위협받았을까? 조선과 국민은 어째서 항상 가난했을까?조선 사회 붕괴에는 현실적인 상황 변화도 작용했지만, 국체와 정체 등의 근본적 성격이 연관된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헌법의 전문과 1조 1, 2항에 국체, 정체를 선언했다. 조선의 정체성은 주도 세력인 정도전이 1394년 태조에게 바친 《조선경국전》에 국가의 목표, 정책의 대강과 방법론 등이 담겨 있다. 여기서 ‘국민(民)’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왕(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