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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화폐가 신뢰를 잃으면 휴지와 다름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는 걷은 돈보다 더 쓴다. 경제가 파탄나는데도 로마의 군인황제들이 저질 은화를 발행한 것도 돈이 급했기 때문이다. 국가 부채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군대를 유지하고 복지사업을 펴고 호화생활을 하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세금은 저항이 컸고 정복 지역이 줄어 세금이 쪼그라드는 판이었기에 조폐소에서 귀금속 함량을 줄여 그 차익, 곧 시뇨리지(화폐 액면가에서 제조비용을 뺀 차익)를 챙기는 것은 세금 징수보다 손쉬운 일이었다.은화의 실질 가치가 낮아졌으니 물가가 뛰는 인플레이션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3세기에 로마의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5~6%로 추정된다. 해마다 6%씩 오르면 물가는 12년마다 두 배가 된다. 군인황제시대는 곧 경제와 민생 붕괴였다.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정치·경제적 혼란을 수습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순도 100%인 새 은화를 만들어 화폐가치를 안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이미 화폐 시스템의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새로 발행한 은화도 곧 사라지고 물가는 더 올랐다. 급기야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가격통제 칙령까지 내렸다. 그러나 물가는 법으로 누른다고 내려가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는 더 위축됐고, 사람들은 못 믿을 화폐 대신 물물교환으로 돌아섰다. 뒤를 이은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는 306년 순금으로 새 금화 솔리두스를 만들고, 330년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기는 과정에서 금을 대부분 가져가 예전 수도 로마는 쇠퇴하고 말았다.시뇨리지는 ‘인플레이션 세금’으로 불린다. 화폐 발행량을 부풀릴수록 물가는 부풀어 오른다. 군인황제들이 불량 은화의 시뇨리지로 국고를 채운 대가가 물가 폭탄이었다. 인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