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민주주의 꽃 피웠던 고대 그리스 아테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가장 큰 ‘공업’ 생산 시설은 방패를 제작하는 곳이었다. 이 시설은 물론 오늘날의 시선으로 볼 때 대규모라고 하긴 힘들다. 하지만 이곳에선 무려 120명의 노예가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플라톤의 《국가》에도 잠시 등장하는 시라쿠사 출신 케팔로스의 소유였다. 이 같은 대규모 노예경제 시설이 아주 이례적인 것만도 아니었다. 유명한 웅변가이자 정치가였던 데모스테네스가 소유권 분쟁을 벌였던 부친의 재산에는 칼을 만드는 32명의 전문 노예 도공과 침대를 제작하는 20명의 소목수가 포함돼 있었다.마르크스주의 역사관에서 고대 세계를 ‘노예제 사회’로 정의내린 뒤 고전기 그리스 사회의 노예의 존재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 시기 노예는 후대인이 생각하는 개념에 따라 칼로 자르듯 확실하게 구분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건이나 재산처럼 인격이 완전히 상실되지도 않은 모호한 경계선상에 있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불분명한 정체에도 불구하고 노예제는 그리스 문명의 기본적인 요소였다. 그리고 이런 노예제를 자양분 삼아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었던 역설도 성립된다. 인류 역사상 고대 지중해 유역과 콜럼버스 이후 신세계에서 총 다섯 곳 정도 발견된다는 세계사에서도 드문 존재인 노예제가 서구 고대문명의 핵심 지대에서 발현해 전성기를 누렸던 것이다. 정치·군사 부문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노예가 활동그리스에 노예제가 확산된 계기는 페르시아 전쟁이었다. 이전에는 대규모로 노예를 창출할 만한 큰 전쟁이 적었다. 헤로도토스가 동양의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