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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오정희 《중국인 거리》

    항구도시 외곽에 이주한 주인공화자인 ‘나’의 가족은 전쟁통에 머물렀던 피난지를 떠나 항구 도시 외곽의 중국인 거리로 이주한다. 미군 부대와 기지촌에 둘러싸인 이 도시는 석탄을 싣고 온 화차에서 날리는 탄가루로 늘 그늘져 있고 거무죽죽한 공기 속으로는 회충약으로 쓸 해안초 끓이는 냄새가 노오랗게 떠다닌다. 포격에 무너진 건물들이 드문드문 보일 뿐 거리는 텅 비어 을씨년스럽다.‘나’는 동네에 사는 치옥과 단짝이다. 치옥의 집 2층에는 양갈보 매기 언니가 세 들어 있다. 동네 대부분의 집은 양갈보에게 세를 주고 있다. ‘나’는 등굣길에 치옥네에 들러 굳이 매기 언니의 방까지 올라가 문 안을 흘끔거리며 치옥을 불러낸다. 매기 언니는 검둥이 애인과 함께 산다. 언니가 외출하면 ‘나’는 언니의 빈 방에 놀러가 화장품, 페티코트, 속눈썹, 미제 비스킷, 유리알 브로치 등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논다. 치옥이 알 굵은 유리 목걸이를 목에 걸고 ‘난 커서 양갈보가 될 테야’라고 단호히 말할 때 ‘나’ 역시 치옥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미군부대와 기지촌의 여자들화자의 가족은 이 도시 못지않게 황폐하다. 단속을 피해 담배 장사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왔던 어머니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계속 동생을 낳고 있으며 성품이 냉정한 할머니는 ‘나’가 하교하면 기다렸다는 듯 막 젖이 떨어진 막내 동생을 업혀 내쫓는다. 아버지는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 가족을 끌고 이 도시로 왔지만 가족을 행복하고 풍족하게 해 주지는 못한다. 곤궁한 집안의 어린 딸에게 화려한 물건들이 전시된 매기 언니의 방은 신기한 이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