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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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당신은 어느 분야에 비교우위가 있습니까
1963년 미국의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작은 영화관에서 '파이어라이트' 유료 상영회가 열렸다. '파이어라이트'는 상영 시간이 140분이 넘는 독립영화로, 500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코닥 8㎜ 카메라로 촬영한 전쟁영화 '파이어라이트'의 감독은 이제 겨우 열여섯 살짜리 소년이었다. 아버지에게서 영화제작비 400달러를 빌려 '파이어라이트'를 찍었고, 상영 수익금으로 부채를 모두 갚고 도 100달러의 이득을 남긴 소년 감독의 이름은 스티븐 스 필버그, 바로 미국 영화계의 거장이자 20세기 최고의 영화 감독이다.스필버그는 어릴 때부터 지독한 영화광이었다. 부모님께 코닥 8㎜ 카메라를 선물로 받은 열두 살 때부터 짧은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열여섯 살에는 ‘파이어라이트’를 제작 및 유료 상영했으며, 성년이 된 뒤에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들락거리며 무급 인턴에서 TV 영화감독, 극장용 영화감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1975년 ‘죠스’로 세계적인 흥행 감독으로서 위상을 획득했다.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갖춘 영화감독 스필버그이후 스필버그는 승승장구했다.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와 ‘E.T.’ ‘쥬라기 공원’ 등 최고의 흥행작을 쏟아냈다. 상업 어드벤처 영화뿐만 아니라 진중한 주제와 뛰어난 작품성을 자랑하는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 ‘컬러 퍼플’ ‘태양의 제국’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이 그렇다. 특히 ‘쉰들러 리스트’는 스필버그에게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준 대표작이다.스필버그의 강점은 작품성과 흥행성 둘 다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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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야구에선 크게 실패…'잘 하는 일' 하다 보면 '좋아 하는 일'이 될 수도
마이클 조던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조던’이란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마이클 조던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유명한 불세출의 농구 스타다. 13년 동안 조던은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득점왕을 열 번, 정규 시즌 MVP를 다섯 번, 결승 MVP를 여섯 번 차지했고 그의 소속팀 시카고 불스를 여섯 번이나 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마이클 조던의 흑역사이렇게 완벽하게 농구계를 지배한 조던이지만 그에게도 완벽하지 못했던 역사가 있었다. 농구 커리어를 쌓는 중간에 잠깐 야구로 외도를 한 것이다. 당시 조던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아버지가 농구만큼이나 조던이 야구하는 모습도 좋아했다는 게 야구로 전직했던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농구공 대신 야구 배트를 잡은 전직 농구 황제의 야구 실력에 전 세계 미디어가 주목했다. 그런데 호기롭게 시작한 조던의 야구 인생은 미국 프로야구 트리플A에서 보낸 1년으로 끝나고 말았다. 트리플A 리그는 메이저 리그 바로 밑에 있는 2부 리그다. 농구 코트에서 가히 신화적인 존재였던 그가 야구장에서는 비주류 선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미국의 한 스포츠지는 야구 선수 시절의 조던을 가리켜 ‘에어 조던’이 아닌 ‘에러 조던’이었다며 비아냥댔다. 누구보다 승부욕이 컸던 조던은 난생처음 맛본 쓰라린 실패에 좌절감이 컸다고 한다.자기계발서의 허점사회생활의 시작을 앞둔 청년들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종종 고민에 빠지곤 한다.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겹친다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