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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경주, 수로 교통 발달한 해항 도시…초기부터 일본 혼슈 진출

    신라는 진한 12국 가운데 하나인 사로국을 중심으로 출발했다. 4세기가 끝날 때까지도 자체 통일을 완수하지 못했으며, 초기부터 가야는 물론 왜 세력의 침공을 받는 수난을 겪었다. 학자들은 신라가 고대국가로 늦게 발전한 원인을 영역이 동남부 내륙지방에 국한돼 고립됐고, 수도가 교통이 불편한 분지였다는 데서 찾는다. 항구 도시 경주의 선택정말 그럴까? <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 한전(韓傳)에 따르면 진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진(秦)나라 때 난리를 피해 한국에 온 사람들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이들은 산둥(山東)이나 랴오둥(遼東) 등의 해안가에 살았던 동이족들로 뱃길을 이용해 서해를 건너왔으며, 후에는 중국 지역과 무역을 벌였다. 또 변진(가야의 전신)과 마찬가지로 바다를 건너 제주도의 주호, 일본 열도의 왜 등과 철 등을 무역했다. 그렇다면 진한을 계승한 신라는 초기부터 교역망과 해양 활동 능력이 발달했을 것이다.수도인 경주는 하늘에서 내려온 백마가 낳은 큰 알에서 탄생한 박혁거세가 우물과 관련된 여인(水神)과 결혼해 건국한 땅이다. 이런 신령성 때문에 ‘금성(金城·신령스러운 도읍)’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경주는 실제로는 지정학적이고 지경학적인 가치가 풍부했으며, 이는 해양 활동과 깊이 연관돼 있다. 국가 항구로 사용된 감포경주시에서 북쪽으로 형산강을 따라가다 보면 포항 영일만에서 동해로 들어간다. 아달라왕 때인 157년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라는 제사집단이 일본 열도를 향해 출항한 ‘도기야’가 있다. 또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을 넘어서 내려가면 감포가 있다. 면적은 좁지만 직선 거리로는 경주와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