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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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자유의 여신상이 푸른 빛을 띠는 이유는
미국 뉴욕 허드슨강 어귀의 리버티섬은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에서 주인공 에디 레드메인이 가방을 들고 입국 수속을 기다리던 곳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에 도착한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던 것이 자유의 여신상이다.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 계획을 수립하고 10년 뒤 1886년 미국에 선물한 것이다. 정식 명칭은 ‘세계를 비추는 자유’다. 이 거대한 여신상은 높이 46m, 무게는 225t에 달한다. 받침대까지 합치면 높이가 93.5m이고, 손가락 하나가 2.44m에 달할 만큼 거대한 규모다. 7개의 뿔이 달린 왕관은 7대륙을 상징한다. 오른손에는 세계를 비추는 자유의 횃불을, 왼손에는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내부에는 전망대와 박물관도 있다. 프랑스 조각가 프레데릭 바르톨디가 제작했고, 내부 철골 구조물은 에펠탑 설계자인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했다. 1884년 완성돼 잠시 파리에 있다가 이듬해 배로 옮겨져 1886년 현재 위치에 세워졌다.자유의 여신상은 페인트칠을 하지 않았는데도 푸른빛을 띠고 있다. 주철 조형물에 구리를 덧씌웠기 때문이다. 구리에 끼는 청록색 녹을 녹청이라고 한다. 공기 중 수분과 이산화탄소 작용으로 구리 표면에 푸른 피막이 형성된 것이다. 녹청의 화학성분은 염기성 탄산구리, 또는 산화구리다. 녹청이 끼면 더 이상 산화가 진행되지 않아 반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 박물관에 가보면 철기시대 유물은 형체가 훼손될 만큼 녹이 슨 반면, 청동기 유물은 비교적 원형이 보전돼 있는 까닭이다. ‘아이스맨 외치’가 지닌 무기는 구리로 만든 도끼고대부터 인류가 사용해 온 7가지 금속은 구리, 납, 은, 금, 주석, 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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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생글이 통신
미국 대학 진학, 명문대보다 자신과 맞는 곳을 골라야
‘재수는 생각해본 적 없니?’ 제가 와바시 대학(Wabash College)으로 진학한다고 했을 때, 주변 어른들께서 제게 하신 말씀입니다. 와바시 대학. 굉장히 생소한 대학일 겁니다. 미국 대학 지원을 위해 수년간 준비하던 저조차도 이 학교에 지원하기 전까지 자세한 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와바시 대학은 1832년 다트머스대 졸업생들이 인디애나 크로포즈빌이라는 조그마한 소도시에 세운 대학으로, 미국에서 세 군데 남은 4년제 남자대학 중 하나입니다. 굳이 많고 많은 남녀공학 대학 대신 미국 내에서도 크게 인기가 없는 남자대학에 진학한 이유가 저에게는 있었습니다.저는 고등학교 선택을 잘못해서 큰 낭패를 보았습니다.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전공언어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해 학업에 지장을 겪었던 것입니다. 이런 실패를 겪고 나니 학교를 지원할 때는 단순히 명성만이 아니라 주변 환경, 교육 체계, 학생들 간 분위기 등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더군다나 한국도 지역마다 분위기가 다르지만, 미국은 땅이 넓어서 주마다 분위기가 굉장히 다릅니다. 샌프란시스코와 맨해튼 하면 누구나 미국을 떠올리겠지만, 각각이 위치한 캘리포니아와 뉴욕의 분위기는 정반대입니다. 이런지라 저는 단순히 성적을 보고 지원할 학교를 정하지 않고, 학교를 보고 지원하지 말지를 정하자고 생각했습니다.이렇게 생각을 한 후 친 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아이비리그 대학(미국 동부에 있는 8개 명문대)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점수였습니다. 주변에서도 그 정도 성적을 받았다 하니 미국 명문대 입학이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말이 나왔고 저도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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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경제활력 넘치는 호찌민…베트남 실용주의의 상징
호찌민은 20세기 베트남전쟁을 승리로 이끈 베트남의 초대 국가 주석인 국부(國父)의 이름이다. 이 지도자의 이름을 딴 베트남 남단에 위치한 호찌민시(Ho Chi Minh City)는 인구 약 900만 명이 거주하는 베트남 남부의 최대 도시이다. 수도인 하노이에서 약 1700㎞ 떨어져 있다. 서울과 부산의 거리가 325㎞이니, 서울~부산 거리의 약 5배이고 비행기로만 약 2시간10분이 걸린다. 베트남은 매우 긴 나라다.(3) 베트남 경제중심지 호찌민베트남 국부의 이름을 딴 도시호찌민시의 과거 이름은 사이공이고, 여전히 사이공이라는 명칭이 곳곳에 남아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나, 한국의 쌀국수 음식점에도 사이공이란 명칭을 종종 쓰기 때문에 우리는 사이공이라는 명칭에 더 친숙할 수도 있다. 호찌민시 안에서도 사이공이란 이름을 현재에도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다. 호찌민시의 기차역 명칭도 사이공역이고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맥주의 브랜드 네임도 ‘사이공맥주’다. 그리고 호찌민시의 유명 호텔 중의 하나가 된 한국계 호텔의 명칭도 ‘롯데 레전드 호텔 사이공’이다.호찌민시는 16세기까지는 캄보디아 영토였다가 이후 베트남이 이 도시를 포함한 주변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베트남 영토가 된다. 한참 시간이 흐른 1858년 베트남과 프랑스 간 전쟁 때 이 도시는 프랑스에 의해 점령되기도 하다가, 1862년 베트남·프랑스 전쟁의 종전 후부터 1945년까지 오랜 기간 프랑스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된다. 현재에도 호찌민시에 프랑스식 건축물과 유명 바케트집이 많은 이유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물러간 이후에는 남베트남의 수도가 된다.1인당 GDP 베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