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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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시사경제
금융허브 월가·런던시티·홍콩…글로벌 금융社·기관 몰린 곳
명실상부한 ‘아시아 금융허브’였던 홍콩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홍콩에 거점을 둔 미국 기업 수가 18년 만에 최소 수준으로 줄었고, 미국 기업이 떠난 자리는 중국 기업이 채우고 있다. 홍콩 통계처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홍콩에 아시아·태평양 등 지역본부를 둔 미국 기업은 254개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10% 감소한 것으로 2003년(252개) 후 최저치다. 대신 중국 본토기업이 1년 새 5% 늘어 252개를 기록했다.홍콩은 세계 3대 기업공개(IPO) 시장 지위에서도 밀려났다. 올 들어 홍콩 증시에서 IPO로 조달된 자금은 378억달러로 미국 나스닥과 뉴욕증권거래소,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이어 4위였다. 지난해까지 세 손가락 안에 들었으나 올해는 순위가 떨어졌다. 세계 각국은 ‘금융허브 키우기’ 경쟁 중금융허브(financial hub)는 세계 유수의 금융회사와 다국적기업이 한데 밀집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금융산업이 발달한 지역을 뜻한다.자타공인 ‘최고의 금융허브’는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다. 지도상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이스트리버에 이르는 이 지역에는 미국 증권거래소와 어음교환소, 뉴욕연방은행, 시티뱅크, 체이스맨해튼, 모건스탠리 등 핵심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본사가 집결했다. 유럽 금융의 중심지로는 영국 런던이 꼽힌다. 여의도보다 작은 행정구역인 시티(City)라는 곳에 금융회사 사무실이 수천 개 몰려 있다.영국과 미국은 금융패권 1인자 자리를 놓고 치열한 자존심 싸움을 벌여왔다. 전통 제조업 중심의 성장에서 한계를 맞닥뜨린 선진국들은 서비스업, 그중에서도 수익성과 고용창출 효과가 큰 금융업을 차세대 산업으로 육성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중국과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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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反중국 민주화 진영 86% 압승
홍콩 시민들이 ‘선거 혁명’을 일궈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처음으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이번 선거는 구의원을 뽑는 지방선거지만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향후 입법회(의회)와 행정장관(행정수반) 선거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홍콩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동력을 잃어가던 길거리 시위도 다시 거세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홍콩 정부와 의회에 민주 인사들을 대거 진출시켜 독립과 자치권 요구를 관철하는 제도권 투쟁도 활발해질 전망이다.범민주 진영, 전체 452석 중 388석 확보지난달 24일 18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은 전체 452석 중 388석(85.8%)을 확보했다. 반면 친중파는 60석(13.3%)을 얻는 데 그쳤다. 4년 전 선거에서 친중파가 327석, 범민주 진영이 118석을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범민주 진영이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일명 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민들의 반중(反中)·반정부 민심이 폭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위에 강경 진압으로 일관한 홍콩 정부와 중국 중앙정부를 심판하고자 홍콩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투표에 나섰다. 홍콩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선거엔 모두 294만여 명의 유권자가 투표했다. 앞서 가장 많은 220만여 명이 참여했던 2016년 입법회 의원(국회의원) 선거 때보다 훨씬 많다. 최종 투표율도 71.2%로 4년 전 구의원 선거 때의 47.0%를 크게 웃돌았다.홍콩 민주화 운동에 새 동력될 듯선거를 위해 등록한 유권자는 413만 명으로 2015년 369만 명보다 11.9% 늘었다. 18∼35세 젊은 층 유권자가 12.3% 늘어 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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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3개월째 계속되는 홍콩인들의 '반(反)중국' 시위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일명 송환법)으로 촉발된 홍콩 시민들의 대규모 반대 시위가 3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에 시위대가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서며 시위도 갈수록 격렬해지자 홍콩 정부는 송환법 입법을 일단 철회했다. 홍콩 시민들은 이 법이 중국 체제에 반대하는 홍콩인들을 본국(중국)으로 강제송환하는 데 악용돼 ‘일국양제(一國兩制 : 한 국가 두 체제)’의 자치권을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국군 투입 가능성이 제기됐던 지난 18일 주말 대규모 집회(사진)에는 비가 오는데도 홍콩 시민 20여만 명이 모였지만 평화시위가 이어져 중국군 개입은 없었고 경찰과 큰 충돌도 없었다. 홍콩 시위를 놓고 미·중 간 갈등도 커지고 있다. 일부 미국 의원이 시위대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중국 측은 “중국의 내정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며 발끈하고 있다. 홍콩 ‘반(反)중국’ 시위는 일단 무력충돌 우려는 사그라든 모양새다. 하지만 중국 본토에 대한 홍콩인들의 불신이 여전해 향후 사태 추이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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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하나의 중국'은 대만·홍콩·마카오 등을 중국으로 간주…대만은 "별개 국가" 주장…미국 파기선언으로 충돌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경제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오랫동안 인정해 온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해 사실상 파기 선언을 한 게 직접적인 계기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대만, 홍콩, 마카오 등이 모두 중국의 일부’라는 주장이다. 중국 정부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반드시 지키겠다고 공언해 온 개념이다. 중국 공산당은 이를 근거로 티베트, 위구르 등 여러 지방의 분리독립 요구를 일축해 왔다.홍콩과 대만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관련해 중국 정부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지역이다. 홍콩은 1842년 1차 아편전쟁 때 영국에 할양됐다가 1997년 중국에 반환됐다. 이후에도 영국 요구에 따라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나라의 두 개 정치 체제)’와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 원칙을 보장받고 있다. 반면 대만은 다르다. 중국 국민당이 1949년 중화민국을 설립한 이후에도 중국 본토와 별개 국가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대만은 국가가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홍콩은 ‘일국양제’홍콩은 1차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난징조약에 따라 영국에 할양됐다. 이후 중국의 정치·경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1970년대부터 홍콩의 반환 문제가 본격 논의됐다. 오랜 논의 끝에 영국은 1997년 홍콩을 중국에 돌려주기로 합의했다.다만 반환 조건이 붙었다. 사회주의체제 강요 금지가 대표적인 조건이다. 영국 요구에 따라 홍콩은 독립적인 정치·경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1990년 중국은 영국의 요구 사항을 반영해 일국양제와 항인치항을 뼈대로 한 ‘홍콩특별행정구기본법’을 채택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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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홍콩 전역에 反中정서 확산…연일 최대 규모 시위
홍콩 전역이 반(反)중국 정서로 들끓고 있다. 홍콩 내 범죄 용의자를 중국 본토로 연행할 수 있게 하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은 범죄인 인도법 철회를 외치고 있다. 홍콩 시위는 올 3월 31일 처음 시작됐으며 이달 12일 예정됐던 송환법 심의를 기점으로 격렬해졌다. 지난 9일엔 103만여 명이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해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홍콩 정부엔 비상이 걸렸다. 당초 20일 예정됐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처리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6일에도 200만 명의 홍콩 시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캐리 람 행정장관(행정수반)의 사임을 요구했다. 홍콩 인구가 740만 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시민 7명 중 2명꼴로 시위에 참여한 셈이다.현지 매체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03년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때와 같은 저항의 분위기가 홍콩에 퍼졌다”며 “홍콩인들은 자유를 지키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고 전했다.시위대 “홍콩 독립성 위배”이 법안은 중국 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넘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콩은 영국, 미국 등 20개국과 인도 조약을 맺었지만 중국과는 조약을 체결하지 않았다.이 조약의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해 2월 대만에서 벌어진 홍콩인 살인사건이다. 홍콩법은 영국식 속지주의(영외 발생 범죄 불처벌) 원칙에 따라 타국에서 발생한 살인죄를 처벌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홍콩 정부는 대만 문제를 다루면서 중국, 마카오 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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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홍콩 대규모 시위, "범죄인 송환법은 자치권 포기"…중국을 향한 분노
중국 영토이던 홍콩은 아편전쟁을 마무리한 난징조약(1842년)으로 영국에 할양되었다가 1997년 홍콩반환협정으로 다시 중국 영토가 됐다. 하지만 특별행정구로서 2047년까지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사법자율권을 보장받았다. 중국이라는 하나의 나라가 됐지만 홍콩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일국이체제’가 적용된 것이다. 그런 홍콩에서 최근 ‘범죄인 인도법안’을 놓고 반환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홍콩 정부가 자치권을 포기하면서 범죄 용의자를 중국 본토에 인도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 중국 정부가 이를 이용해 반체제 인사나 인권 운동가를 본토로 송환할 수 있게 된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시위가 도로를 점거하는 등 격렬해지자 홍콩 시의회는 12일로 예정됐던 표결을 일단 연기했지만 정부 측은 법안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태는 홍콩 주민들의 중국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낸 것이어서 추이가 주목된다. 사진은 홍콩 시의회 주변에 집결한 시위 군중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