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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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26>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한국 화장품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 중국 소비자들이 한국에 와서 사가는 중요한 품목이 되었다.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도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높다. 국산 화장품은 랑콤이나 시셰이도 같은 외제 화장품보다 급이 한참 낮은 것으로 취급되던 시절이 있었는데 격세지감이 든다.창업자는 서성환··· ‘아모레’ 탄생이렇게 된 데에는 아모레퍼시픽그룹 서경배 회장의 역할이 컸다. 연구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서 국산화장품의 품질을 높였다. 또 일찍부터 한국 화장품의 해외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물론 K팝과 한국 드라마에 대한 인기가 한국 화장품에 대한 인기로 이어진 측면이 있지만 그 전에 품질과 판로 개척을 해두었기 때문이기도 했다.아모레퍼시픽의 뿌리는 개성의 창성상점이다. 1932년 개성에 살던 윤독정 여사가 머릿기름, 세안수 같은 것을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다. 아들인 서성환도 거들기 시작했고 모자(母子)가 같이하는 사업이 됐다. 가게 이름은 창성상점이었다. 해방 후 서성환은 서울로 옮겨와서 태평양화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화장품 제조판매를 시작했다. 6·25전쟁으로 내려간 부산 피난지에서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가 큰 히트를 친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에서도 화장품 사업은 계속 이어졌다. 1961년에는 <아모레>를 화장품의 이름으로 정했다. ‘아모레 아모레 아모레미오~’라는 가사에서 따온 단어인데 당시 누구나 흥얼거리며 다닐 정도로 유행하던 노래의 가사였다.태평양화학을 바꾸다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태평양화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화장품 기업으로 성장해갔다. 서성환의 차남인 서경배가 태평양화학에 들어간 것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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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공산정권 들어서자 북한 기업인들 남한으로…SPC·아모레퍼시픽·진로·대한전선 일궈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는 북한 출신 기업가들이 세운 곳이 많다. 몇 군데 예를 들자면 파리바게트의 SPC 그룹,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 대한전선, 진로 같은 곳이다. 오늘은 이들의 이야기다.■기억해 주세요^^공산당은 개별적인 기업 활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아서, 개인의 재산을 모두 빼앗아 국가의 소유로 했다. 그런 곳에서 기업활동은 불가능했다.일본빵집에서 일 배운 허창성SPC라는 이름의 뜻은 삼립-파리바게트 회사다. 허창성이 세운 삼립식품이 그 뿌리이다. 허창성은 황해도 해주 사람인데 어릴 적 일본인 빵집에서 일을 배워 상미당이라는 빵집을 열었다. 물론 장소는 고향인 해주였다.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다시 가게를 차렸다. 빵 만드는 일을 현대화해서 삼립식품이라는 식품기업으로 키워냈다. 허창성의 차남 허영인은 그것을 다시 SPC라는 새로운 개념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개성 사람 서성환은 화장품 사업을 일으켰다. 해방 전 그는 개성에서 어머니 윤독정 여사와 함께 세안수(얼굴 닦는 액체)와 동백기름(머리에 발라서 윤이 나게 하는 기름) 장사를 했다. 해방이 되자 서울의 남대문 시장에서 본격적인 화장품 사업을 시작한다. 회사의 이름은 태평양화학이라고 붙였다. 사업이 잘 됐으나 70년대에 들어 지나친 다각화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그것을 차남인 서경배가 맡아서 구조조정을 하고 화장품 사업에만 집중한다. 또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시도한다. 그 결과가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이다.‘참이슬’ 창업자 장씨는 평안도 뿌리함경도 출신 기업가로는 지난번에 칼럼에서 소개한 동양제과의 이양구 말고도 설경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