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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약은 무담보, 찍은 표는 환불 없다

    박빙 대선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약좌판은 넘쳐나고 호객행위도 요란하다. 무상복지, 반값 등록금, 두 배 기초노령연금을 띄운 플래카드가 사방에 걸렸지만 돈 나올 구석은 깜깜하다. 공약이 약속대로 이행되는 비극이 닥치면 국가재정 파탄에 앞서 대학부터 거덜나게 됐다. 대학재정 대부분을 국가가 책임지는 독일, 프랑스와는 달리 한국은 등록금과 기부금으로 겨우 꾸려가는 사립대학이 많다. 사립대학 등록금을 절반으로 깎아 정부예산으로 메워주기란 재정여건상 불가능하다. 설령 세금을 대폭 올려 재원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전기가 끊겨 촛불 켜고 자다 화재로 일가족이 참변을 당하고 밀린 집세에 짓눌려 동반자살로 마감하는 비극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상위계층 대학생에게까지 등록금 절반씩을 안겨주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의 대학재정은 지금보다 열악했고 장학금도 훨씬 적었다. 당시 필자는 학과장을 맡고 있었는데 재학생 1500명 학과에 성적장학생 10명이 배정되는 형편이었다. 성적순으로 수혜자가 결정되기 때문에 형편이 다급한 학생을 위해 성적우수자 중에서 양보를 받아내야 했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학부모 직업에 대한 기록은 없었고 생활수준 자기평가에 ‘하’로 표시한 학생 이외에는 일일이 불러 양보를 종용했다. 부친이 공기업 임원임을 밝힌 학생이 먼저 양보했다. 그 학생은 지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다. 시골 출신 학생이 부모님 허락을 받겠다며 말미를 달라고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그 학생이 연구실로 뛰어와 부모님이 허락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한참 세월이 흐른 후 그 학생 늦장가에 주례를 맡았는데 예식장에서 부친을 처음 대면하고 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