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시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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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과 ‘굴라재 활불 사건’
굴라재 활불 사건-만해시편고두현젊은 시절이었지.만주 굴라재 고개 넘다머리에 총 맞은 그날.독립군 후보생들이었어.작은 키에 까까머리 나를일본 밀정으로 오인했다는그들이 무릎 꿇고 비는 동안나도 빌었지. 마취 없이 수술받는 나보다칼 쥔 손 먼저 기도해 달라고.김동삼이라고 했던가. 맞아.그의 손이 자꾸 떨리는 걸 보았어.뒷걸음치는 흰 소의 눈망울 같았지.수술 마친 그가 낮게 외쳤어.활불(活佛)일세! 그러나 이후나는 평생 고개 흔드는 체머리로 살아야 했지.서대문형무소에서 그가 죽은 날북정 고개 넘어 싣고 와서는내 방에 모시고 오일장을 치렀지.일생에 딱 한 번 그때 울었어.그는 쉰아홉, 나는 쉰여덟.광복 8년 전이었지.지금 생각하니죽어서 더 오래 산그가 진짜 활불이었어.고개가 흔들릴 때마다한 땀씩 그가 내 머리에 새겨놓은만주의 햇살이 그립기도 해.그땐 젊어서마취 없이도 세상 견딜 만했지.하루하루가 활불이었어. 그때 우리는.만해는 서른두 살 때 만주 굴라재 고개에서 독립군 후보생들에게 일본 첩자로 오인되어 총격을 당했지요. 일제강점기 ‘관솔불 켜고 천하 대사를 통론하며 한편으로 화승총에 조련을’ 하던 그때, 조선 청년들이 그를 정탐꾼으로 오해해서 3발의 총탄을 쏘았습니다.만해는 ‘생에서 사로 넘어가는 순간 온몸이 지극히 편안한 것 같았고 그 편안한 것까지도 감각을 못하게’ 될 정도로 죽음의 벼랑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습니다.그는 총알이 머리에 박힌 상황에서 마취 없이 수술을 받았습니다. 생살을 째고 탄환을 빼내는 수술 중 앓는 소리 한번 내지 않고 견디는 그를 보고 당시 치료를 맡은 독립운동가 김동삼이 “활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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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겸손 배우는 긴 수업”
“인생은 겸손을 배우는 긴 수업 시간이다.”소설 <피터 팬>의 작가 제임스 매슈 배리(아래 사진)가 한 말이다. 그의 문학적 성취도 겸손에서 나왔다. 그는 낮은 자세로 겸손을 체득한 사람만이 인생의 토양에서 성공의 싹을 틔울 수 있다는 것을 삶과 작품으로 보여줬다.겸손은 사람됨의 근본이다. 한자로 겸손할 겸(謙)은 말씀 언(言)과 겸할 겸(兼)을 결합한 글자다. 겸(兼)은 벼 다발을 손에 쥐고 있는 형상으로 ‘아우르다’ ‘포용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인격과 소양을 두루 갖춘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말을 공손하게 하는 법이다. 겸손할 손(遜)은 ‘후손에 전하다’의 뜻을 함께 지녔으니 대를 잇는 가르침을 의미한다.영어 단어 겸손(humility)의 어원은 흙을 뜻하는 라틴어 후무스(humus)다. 흙 중에서도 영양분과 유기질이 많은 부식토다. 사람(human)이라는 단어도 흙에서 유래했다. 겸손은 흙에서 나온 사람을 성장시키는 토양이다.겸손의 반대어인 교만(驕慢)은 잘난 체하고 뽐내며 건방지다는 말이다. 교만할 교(驕)는 말 마(馬)와 높을 교(喬)로 이뤄져 있다. 말을 높이 타고 아래를 얕잡아본다는 의미다. 병법에서도 교병필패(驕兵必敗)라고 해서 교만한 병사는 적에게 반드시 패한다.거만할 만(慢)은 마음 심(心)과 ‘손으로 눈을 벌려 치켜뜬’ 모습의 끌 만(曼)을 합친 것으로, 눈을 부라리는 태도를 가리킨다. 영어 거만(haughtiness)이 프랑스어 ‘높은(haut)’에서 왔고, 라틴어 어원도 ‘높은(altus)’이니 겸손과 상반된다.그러고 보니 성공(success)이란 말도 ‘흙을 뚫고 나온다’는 뜻의 라틴어 수케데레(succedere)에서 왔다. 흙에서 씨앗이 뚫고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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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근육을 키우는 가장 아름다운 표정, 미소
■ 웃음의 사회학웃을 때 231개 근육 함께 움직여호쾌한 웃음은 10분 운동 효과입·눈까지 다 웃는 게 '뒤센 미소'입만 웃는 '팬암 미소'는 가짜‘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 뒤에는 입술과 눈, 표정을 좌우하는 44개의 미세 근육이 숨겨져 있다.‘웃음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먼 커즌스는 웃음을 방탄조끼에 비유했다. 미국 ‘새터데이 리뷰’ 편집인으로 일하던 그는 52세에 ‘강직 척추염’이라는 불치병에 걸렸다. 류머티즘의 일종으로 염증 때문에 뼈와 근육이 점점 굳어지는 중증 질환이다. 완치율이 낮아 500명 중 1명이 치료될까 말까 할 정도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어 침대에서 돌아눕는 것조차 힘들다.어느 날, 그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 통증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웃음의 치유력에 눈을 뜬 그는 이후 약 15분 웃으면 2시간 이상 통증이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염증 수치까지 줄어들었다. 모르핀으로도 어찌할 수 없었던 통증이 가라앉자 그는 모든 약과 수면제를 끊고 웃음 치료에 진력했다. 그 결과 6개월 만에 다시 걸을 수 있게 됐고, 2년 뒤에는 직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유효기간이 없는 최고의 양약”웃음 치료의 효과에 고무된 그는 여러 대학을 찾아가 경험담을 얘기하며 웃음 연구를 부탁했다. 처음에 비웃던 의과대학 교수들도 그의 끈질긴 설득 덕분에 연구에 들어갔고, 수많은 비밀을 알아내게 됐다. 그 또한 캘리포니아대학 부속병원에서 웃음의 의학적 효과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75세까지 웃음과 건강 연구에 매진한 그는 베스트셀러 <웃음의 치유력(원제: Anatomy of an Illness)>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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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어린 임금의 피맺힌 울음, 단종의 ‘자규시’
자규시(子規詩)단종한 마리 원통한 새 궁중을 떠나온 뒤외로운 홑 그림자 푸른 산중 헤매누나.밤마다 잠을 청해도 잠은 이룰 수 없고해마다 한을 풀려 해도 한은 끝이 없네.울음소리 끊긴 새벽 봉우리 달빛만 희고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붉은 꽃이 지네.하늘은 귀먹어서 슬픈 하소연 못 듣는데어찌하여 설움 많은 내 귀만 홀로 밝은고.비운의 조선 왕 단종(1441~1457)이 강원도 영월 유배지에서 지은 ‘자규시(子規詩)’입니다. 피를 토하듯 운다는 자규, 곧 두견새에 자신을 빗대어 읊은 절창이지요. 짧은 시지만 그 속에 어린 임금의 한이 혈흔처럼 응축돼 있습니다.단종의 삶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현덕왕후를 여의었고, 열한 살에 아버지 문종이 승하하자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지요.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자 단종은 허울뿐인 상왕으로 밀려났습니다.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 이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 청령포로 유배됐습니다.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은 산에 막혀 있는 ‘육지 속의 섬’이지요.청령포에 머문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자 단종은 영월 관아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관풍헌 앞에 누각이 있었는데, 단종은 그곳에 올라 먼 데를 바라보곤 했지요.단종이 누각에서 바라봤을 영월 청령포 모습.이 누각에서 지은 시 중 한 편이 ‘자규시’입니다. 원래 매죽루(梅竹樓)라고 불리던 이 누각은 단종이 여기에서 자규의 한을 담은 시를 읊은 뒤부터 자규루(子規樓)로 불리게 됐습니다.이 시에서 단종은 자신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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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향한 망치보다 나를 다듬는 정을…
“모두가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정작 자신을 바꾸려는 사람은 드물다.”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짧은 산문 <세 가지 개혁 방법>(1900년)에 나오는 명언이다. 톨스토이는 이 글에서 정치가와 혁명가들이 세상의 부조리를 탓하며 타인을 비난하고 제도를 뜯어고치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탐욕과 이기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그는 결국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상을 향한 분노나 외침보다 인간 내면의 윤리적 결단을 중시한 그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톨스토이가 이 문장을 썼을 때 러시아는 혁명의 기운으로 들끓고 있었다. 지식인들은 황제의 폭정을 비판하고, 법을 바꿔야 한다고 외쳤으며, 체제를 무너뜨리면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나를 바꾸는 일은 고통스럽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도덕적 우월감을 주지만, 나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은 수치심을 준다. 일상 습관 하나를 고치는 것이 헌법을 논하는 것보다 어렵다.톨스토이는 이런 비겁함을 꿰뚫어봤다. 그는 집단 속에 숨어 정의를 외치는 자보다 홀로 자신의 이기심과 싸우는 사람이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는 주역이라고 생각했다.우리도 삶의 고비마다 환경을 탓하고, 정치를 탓하며, 운명을 탓하지만 톨스토이는 그 최면을 과감히 깨라고 권한다. 그의 지적처럼 세상을 향한 망치를 내려놓고, 나를 다듬는 정을 드는 데서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고두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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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은 스스로 비추지 못하고, 칼은 스스로 찌를 수 없다
위키피디아장조(張潮)의 역작 <유몽영(幽夢影)>은 청나라 쇠퇴와 함께 잊혔다가 20세기 초중반에 다시 빛을 봤다. <생활의 발견>으로 유명한 린위탕(林語堂·임어당)은 이 책을 읽고 너무나 감격해 영어로 서구에 소개하면서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책”이라고 극찬했다.<유몽영>에는 서양의 아포리즘(aphorism·금언, 격언)이나 에피그램(epigram·경구, 풍자시) 같은 문장이 많다. 빛과 그림자의 양면을 고찰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장조는 “거울과 물속의 그림자는 빛을 받아들인 결과이고, 햇빛과 등불로 만든 그림자는 빛을 베푼 결과”라면서 “하늘의 달도 햇빛을 반사해 그림자를 만드는데, 천공에서 만들어지는 달의 그림자는 햇빛을 받아들인 결과이고 밤에 만들어지는 그림자는 달이 햇빛을 받아 땅에 베푼 결과”라고 설명한다.빛을 반사하는 대상인 거울과 빛을 베푸는 광원(光源)인 달을 대비하면서 그가 달을 사랑하는 까닭 역시 “빛을 받기도 하고 베풀 줄도 알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또 “거울은 스스로를 비추지 못하고, 저울은 스스로를 달지 못하고, 칼은 스스로를 찌를 수 없다”는 경구와 함께 거울을 대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풍자하기도 한다. “추한 용모와 더러운 성깔을 지닌 자가 거울과 원수 되지 않는 것은 거울이 지각없는 사물(死物)이기 때문이다.만일 거울에 지각이 있다면 반드시 박살이 났을 것이다.”모든 잠언과 경구는 오랜 자기 성찰 과정에서 완성된다. 남다른 생각 끝에 체득한 진리를 압축적으로 기록했기에 가장 짧은 말로 가장 긴 울림을 주는 묘미까지 갖췄다. 난세를 헤쳐 갈 묘안도 손에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