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잼잼'에 밀려난 '죔죔'

    ‘도리도리 잼잼’은 몇 해 전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우리말 맞히기 문제로 나와 화제가 된 말이다. 출연자들을 ‘멘붕’으로까지 몰아넣은 이 문제의 정답은 ‘~ 죔죔’이었다. 시청자도 대부분 ‘잼잼’ 또는 ‘젬젬’ 정도로 알고 있었다. ‘물럿거라’나 ‘옛다’ 같은 말도 잘못 쓰는 말이지만 요즘도 틀리게 쓰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준말은 본말의 형태를 반영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준말이라는 것이다. 말을 줄일 때도 원칙이 있다. 본래의 말에서 일부가 줄면서 남은 형태가 어근이나 어간에 달라붙는다. ‘어제저녁→엊저녁, 가지가지→갖가지, 삐거덕→삐걱, 이놈아→인마’ 같은 게 그런 예다. 줄어든 말에서도 본말의 형태를 유지함으로써 본말과 준말의 관련성을 드러내는 것이다.“옜다, 이 돈 받아라”처럼 쓰는 ‘옜다’는 ‘예 있다’의 준말이다. 이때 ‘예’는 ‘여기’의 준말이다. ‘물러 있거라’의 준말인 ‘물렀거라’도 같은 원리다. 모두 본말의 ‘있’에 쓰인 받침을 그대로 이어받음으로써 준말의 유래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단어를 모두 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리를 알고 나면 응용할 수 있다. ‘~하대/~하데’의 구별도 열에 아홉은 헷갈리는 어려운 문제다. 가령 ①“사람이 아주 똑똑하대”와 ②“사람이 아주 똑똑하데”는 어떻게 다를까? 한 가지만 알고 있으면 된다. 즉 ‘-대’는 ‘-다고 해’가 준 말이라는 점이다. 줄었지만 본말의 형태가 반영돼 있다. ①은 누군가가 “A라는 사람이 똑똑하다고 한다&rd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그러하지요 → 그렇죠 → 그죠/그쵸?

    “코로나가 다시 늘어나서 피시방, 노래방, 이런 데 다 영업중단이라고 해요. 장사하시는 분들 속상하시겠어요. 그죠? 게다가 태풍까지 와서 너무 걱정이에요. 하지만 잘 이겨내야 돼요. 그쵸?” 한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자의 근심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는 말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그죠’나 ‘그쵸’를 덧붙인다. 구어에서 쓰는 ‘그죠/그쵸’ 어법에 안 맞아일상 대화에서 ‘그죠/그쵸’는 아주 흔히 쓰는 말이다. “이게 맞지~, 그지~” 이런 말도 많이 한다. ‘그지’ 대신 ‘그치’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글로 쓸 때면 좀 주저하게 된다. “이렇게 써도 맞나?”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죠/그쵸, 그지/그치’는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다. 입말에서 자주 듣지만 규범적으로는 허용되지 않는다.‘그죠/그쵸’는 어디서 왔을까? 둘 다 ‘그렇죠’를 줄여 쓴 말이란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또 ‘그렇죠’가 ‘그렇지요’의 준말이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죠’의 기본형 ‘그렇다’는 더 올라가면 ‘그러하다’가 준 것이다. 정리하면 ‘그러하지요→그렇지요→그렇죠→그죠/그쵸’로 준 말임이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그죠/그쵸’만 문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까닭은 왜일까? 기본형 ‘그렇다’가 ㅎ불규칙 용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그러하다’가 ‘그렇다’로 주는 현상을 규범화한 게 한글맞춤법 ‘제40항 붙임1’이다. 준말에서 ‘ㅎ이 어간의 끝소리로 굳어져 있는 것은 받침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외래어 '욜로', 고유어 '욜로'

    ‘욜로’는 외래어다. Yolo, 즉 ‘You only live once’의 앞글자를 딴 용어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라는 뜻의 말로, 현재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을 말한다. 2013년께부터 한국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해 2017년을 전후해 우리 사회의 여러 소비문화 현상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말로 자리잡았다. ‘요리로’가 줄어 ‘욜로’로 바뀐 순우리말‘욜로’는 우리 고유어이기도 하다. “욜로 가면 지름길이 나온다”라고 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우리말에 있는 ‘글로, 졸로, 절로, 일로, 골로’ 같은 말도 낯설게 보일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욜로족’이니 ‘욜로 라이프’니 하는 외국말은 잘 알아도 우리 고유어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욜로’는 ‘요리로’의 준말이다. 마찬가지로 ‘그리로→글로, 조리로→졸로, 저리로→절로, 이리로→일로, 고리로→골로’로 줄어든다. 한글맞춤법 제33항에 나오는 용법이다.우리말은 체언과 조사가 결합할 때 말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무엇을’이 줄어 ‘뭣을’ 또는 ‘무얼’이 된다. 이 말은 다시 ‘뭘’까지로 준다. ‘그것은, 그것으로’가 줄면 ‘그건, 그걸로’가 되는 식이다. 말에도 ‘언어의 경제성’이 작용한 결과다. 준말이 효율성이 높아 구어에서는 자연스럽게 준말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이는 부사에 조사가 어울릴 때도 마찬가지다. ‘욜로, 글로,…’ 등의 준말이 성립하는 문법적 근거다. 글쓰기에선 본말 쓰는 게 의미전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세금을 거두다/걷다'는 둘 다 쓸 수 있어요

    계절은 어느새 가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추수를 앞두고 들녘은 ‘가을걷이’ 준비가 한창이다. 이때의 ‘걷이’는 ‘걷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파생명사다. 또 ‘걷다’는 본말 ‘거두다’가 줄어든 말이다. ‘열매를 걷다’ ‘곡식을 걷다’ ‘추수를 걷다’ 등에 쓰인 ‘걷다’가 모두 ‘거두다’에서 온 말이다. 준말과 본말을 함께 쓸 수 있다.성공은 ‘거두는’ 것, 빨래는 ‘걷는’ 것‘거두다→걷다’는 우리말 준말이 만들어지는 여러 원칙 중 하나를 보여준다. 즉 어간에서 끝음절의 모음이 줄어들고 자음만 남는 경우 자음을 앞 음절의 받침으로 적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제저녁→엊저녁’처럼 남은 자음 ‘ㅈ’이 앞 음절의 받침으로 온다. 한글맞춤법 제32항 규정 중 하나다. ‘가지다→갖다’ ‘디디다→딛다’도 같은 방식으로 줄어들었다.다만 ‘거두다’는 의미용법이 워낙 많아 세밀한 주의가 필요하다. 가령 ‘열매를 거두다/걷다’를 비롯해 ‘세금을 거두다/걷다’는 ‘본말/준말’ 관계다. 두 가지 다 쓸 수 있다. 하지만 ‘성공을 거두다’ ‘아이를 양자로 거두어 키웠다’ 같은 데 쓰인 ‘거두다’는 ‘걷다’로 줄지 않는다. ‘거두다’만 가능하다. ‘웃음을 거두고’ ‘의혹의 시선을 거두었다’에서도 ‘거두다’만 되고 ‘걷다’는 안 된다.반면 ‘소매를 걷고’ ‘커튼을 걷어라’ ‘비가 오려 해서 빨래를 걷었다’에서는 ‘걷다’만 되고 ‘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바뀌었다'를 '바꼈다'로 줄여 쓰는 건 잘못

    “전화번호가 OOO-××××로 바꼈어요.” “그는 그녀와 중학교 때부터 사겼다고 한다.” “그 여자는 내 말에 콧방귀만 꼈다.” 이런 말에는 공통적인 오류가 들어 있다. ‘바꼈어요, 사겼다고, 꼈다’가 그것이다. 각각 ‘바뀌었어요, 사귀었다고, 뀌었다’를 잘못 썼다.한글 모음자에 ‘ㅜ+ㅕ’ 없어 더 이상 줄지 않아이들의 기본형은 ‘바뀌다, 사귀다, 뀌다’이다. 공통점은 어간에 모두 모음 ‘ㅟ’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뒤에 모음 어미 ‘-어’가 붙을 때 줄어들지 않는, 우리말의 독특한 모음 체계 한 가지를 보여준다.얼핏 보기에 ‘바뀌+어→바껴’로 줄어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모음끼리 어울려 ‘-여’로 바뀌는 것은 어간 ‘이’와 어미 ‘-어’가 결합할 때다(한글맞춤법 제36항). ‘가지어→가져, 견디어→견뎌, 막히어→막혀’ 같은 무수한 말들이 모두 그렇게 줄었다. 그러면 예의 ‘바뀌다, 사귀다’ 등에 어미 ‘-어’가 어울리면 어떻게 바뀔까? ‘~이어→~여’의 원리를 적용하면 ‘ㅟ어→(ㅜㅕ)’, 즉 ‘바(꾸ㅕ), 사(구ㅕ)’쯤 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모음 체계에는 이를 나타낼 글자가 없다. 컴퓨터 자판으로도 조합이 안 돼 두 글자로 써야 할 판이다.이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부터 없던 것이다. 한글 자모는 자음 14개, 모음 10개로 24자다. 모음만 보면 ‘아, 야, 어, 여, 오, 요, 우, 유, 으, 이’이다. 이 10개 모음자로 적을 수 없는 소리는 두세 개를 합쳐 적는데, 그것은 ‘애, 얘, 에, 예, 와, 왜, 외,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따 논 당상'이 아니라 '따 놓은 당상'이에요

    “남의 잔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라는 말을 흔히 쓴다. 남의 일에 공연히 간섭하고 나서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우리 속담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이런 경향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우승은 따 논 당상”이라고도 한다. 일이 확실하여 조금도 틀림이 없음을 나타낼 때 하는 말이다. 두 속담에 쓰인 ‘놔라/논’은 모두 기본형 ‘놓다’에서 온 말이다.‘놓다’는 규칙활용…‘논’으로 줄지 않아그런데 ‘놔라/논’ 형태를 보기에 따라 좀 낯설게 느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놓아라/놓은’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놓아라’는 ‘놔라’로 줄여 쓸 수 있지만, ‘놓은’은 ‘논’으로 줄지 않는다. 틀린 표기라는 뜻이다.우선 ‘놔라’부터 살펴보자. ‘놓다’는 규칙동사다. 활용을 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놓고/놓지/놓아/놓은/놓았다’ 식으로 어간인 ‘놓-’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놓아’나 ‘놓아라/놓았다’ 같은 것을 ‘놔/놔라/놨다’로도 쓴다. 받침 ㅎ이 탈락하면서 말 자체도 줄어들었다. 이는 비슷한 형태인 ‘좋다’가 ‘좋아→좌’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면 특이한 사례다. 그래서 한글 맞춤법에서도 이를 예외적인 현상으로 다뤄 그 용법을 인정했다. 맞춤법 35항에서 ‘놓다’가 어미 ‘-아’와 결합할 때 ‘놓아→놔, 놓아라→놔라, 놓았다→놨다’로 줄어들 수 있다고 따로 정했다. 두 가지를 다 쓸 수 있다는 뜻이다.그러나 ‘놓은’을 &lsqu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