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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화폐가 등장할 때부터 끊임없이 반복됐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는 표현은 널리 알려진 문구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 아닐까 싶다. 일상생활에서 ‘구축’이라는 단어는 “진지를 구축(構築)한다”는 식으로 주로 쓰이기 때문이다. ‘어떤 세력 따위를 몰아서 쫓아냄’이란 뜻을 지닌 ‘구축(驅逐)’이라는 낱말은 이젠 사전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법하다. ‘악화’나 ‘양화’란 단어도 쉰내를 폴폴 풍기긴 마찬가지다.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6년간 취해진 ‘양적 완화’ 처방도 따지고 보면 돈의 가치를 떨어뜨려 빚 부담을 줄이는 것이니 어쩌면 오늘날도 악화가 양화를 계속 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 저명한 경제사학자인 갤브레이스는 “역사상 단 한 번도 도전받지 않은 경제법칙”으로 나쁜 돈이 좋은 돈을 쫓아버린다는 소위 ‘그레셤의 법칙’을 꼽기도 했다. 금속화폐의 무게와 순도 조작‘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은 금속화폐가 등장하는 것과 동시에 시작됐다. 금속화폐는 처음에 오늘날 금괴와 비슷한 막대형이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고대 로마 시대 플리니우스의 기록을 인용하면서 “고대 로마인들은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시대까지 주화를 가지지 않았고 필요한 것을 구매하기 위해선 각인되지 않은 구리덩어리를 썼다”는 ‘전설’을 전했다. 문제는 매번 거래할 때마다 무게와 금, 은의 순도를 확인해야 했다는 점이다. 그런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막대 표면에 무게와 순도를 확인하는 인장을 찍었다. 하지만 인장은 위조하기 쉬웠고, 막대의 일부를 잘라내도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