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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성리학 사상으로 이상사회 건설하려 했지만…관념적이고 원론적인 선언·정강이 새로운 문제 낳아

    1592년 음력 4월 13일 황혼이 깃들 무렵, 700척에 탄 일본 병력이 부산포에 상륙했다. 임진왜란의 시작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명가도(征明假道)’란 명분을 내걸고 20여만 명의 대군을 파견했다. 4일째 아침나절에야 상륙 소식을 접한 조선 조정은 병력을 파견했지만 신식 무기로 무장한 왜군은 불과 20여 일 만에 한양을 함락했다. 그사이 도망간 정부와 군대 대신 의병들이 전국에서 항전했고,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연승하면서 전쟁은 소강상태를 이뤘다. 이어 정유재란을 거쳐 7년간에 걸친 참혹한 전쟁은 막을 내렸다.국제정세를 보면 알 수 있었고, 일본이 명나라와 조선을 공격한다는 정보들이 유구국을 통해서도 알려졌다. 심지어 간첩으로 활동했고, 훗날 향도 역할을 한 승려 겐소는 일본이 침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기이하고 무능한 정부는 갑론을박 끝에 서인인 황윤길과 동인인 김성일을 정사와 부사로 일본에 파견해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공격 가능성을 놓고 정치적으로 반대파인 두 사람의 의견은 정반대였다.불가사의 한 일이다. 존재 의미를 물을 수밖에 없는 정부와 군대, 관리, 지식인 그리고 백성들이었다. 왜 조선은 국방을 무시해 생존을 위협받았을까? 조선과 국민은 어째서 항상 가난했을까?조선 사회 붕괴에는 현실적인 상황 변화도 작용했지만, 국체와 정체 등의 근본적 성격이 연관된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헌법의 전문과 1조 1, 2항에 국체, 정체를 선언했다. 조선의 정체성은 주도 세력인 정도전이 1394년 태조에게 바친 《조선경국전》에 국가의 목표, 정책의 대강과 방법론 등이 담겨 있다. 여기서 ‘국민(民)’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왕(人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조선시대 마을마다 글 읽는 소리 낭자하고…양반 문중마을로 숨는 사람 늘어난 까닭은

    조선시대 평민에게 군포(軍布)를 징수하기 시작한 것은 1626년이다.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뒤 명나라를 돕기 위해 용병을 모집했는데, 이 비용을 충당하고자 군포제를 시행했다. 문제는 이때 인조가 양반층엔 군역을 면제해주고 평민에게만 군역 면제 대가로 포(布)를 받았다는 데 있다. 조선 초에는 양역(良役)이라 하여 원칙적으론 양인을 대상으로 군역이 부과됐고, 양반가의 자제라 해도 군역을 지게 했지만 이제 양반들은 이 같은 속박에서 합법적으로 벗어나게 됐다. 이념상 임금과 백성의 관계는 계급적 관계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 관계로 상정돼 조세가 최대한 공정하고 가벼워야 한다는 ‘겉치레’마저 사라져버렸다.인조는 이 같은 세금 면제 정책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 1626년 일반인과 양반층을 구별하는 새로운 호적을 마련했고, 이에 따른 호패를 발급했다. 후금과의 전운이 감도는 시기에 정부가 새로운 호적을 작성하자 조금이라도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군역을 피하려고 모두 (양반 대우를 받고자) 향교나 서원에 입학했다. 조상을 위조하는 환부역조(換父易祖) 등으로 양반을 칭하면서 군역 부담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재물을 관가에 바치거나 벼슬을 사고, 의원 역관 화원의 신분으로 지방의 수령을 얻거나 족보를 위조해 양반 행세를 하는 부류가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군역을 질 젊은이들이 모두 ‘국방과 조세의 의무’를 행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유학생으로 자처하고자 소리 높여 글을 읽으니 ‘전국에 글 읽는 소리가 낭자했다’고 전해진다.이제 병역 의무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만 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들이 피해간 세금은 힘없는 농

  •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버림받아도 순종하는 여인이여! 그대 이름은…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한생 연분(緣分)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나 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이 마음 이 사랑 견졸 데 노여 업다평생(平生)애 원(願)하요데 한데 녜쟈 하얏더니늙거야 므스 일로 외오 두고 그리는고엇그제 님을 뫼셔 광한뎐(廣寒殿)의 올낫더니그 더데 엇디하야 하계(下界)예 나려오니올 저긔 비슨 머리 헛틀언 디 삼 년일쇠연지분(脂粉) 잇네마는 눌 위하야 고이 할고마음의 매친 실음 ??(疊疊)이 싸혀 이셔짓느니 한숨이오 디느니 눈믈이라인생(人生)은 유한(有限)한데 시름도 그지업다무심(無心)한 셰월(歲月)은 믈 흐르듯 하는고야염냥(炎凉)이 때를 아라 가는 듯 고텨 오니듯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동풍이 건듯 부러 ?셜(積雪)을 헤텨 내니창(窓) 밧긔 심근 매화(梅花) 두세 가지 ?여셰라갓득 냉담(冷淡)한데 암향(暗香)은 므스 일고황혼의 달이 조차 벼마테 빗최니늣기는 듯 반기는 듯 님이신가 아니신가뎌 매화 것거 내여 님 겨신 데 보내오져님이 너를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정철, 사미인곡 - 님을 조차 삼기시니 … 님을 뫼셔 … 연지분(脂粉) 잇네마는 … 달조선 시대에는 남녀가 유별하였다. 남녀를 분별, 즉 구별하여 나눴던 것이다. 말이 분별이지 그것은 차별에 가까워서, 여자는 남자를 따르고 남자에 종속된 존재였다.이를 고려하면 시적 화자 ‘나’는 여자이고 ‘님’은 남자임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님을 조차(좇아) 삼기(‘삼기다’는 생기게 하다는 뜻의 옛말인데, 자주 나오는 어휘이니 외워 두자)’게 된 존재이고, ‘님을 뫼시’고 있었다. ‘나’는 임에 종속되고 임은 &lsqu

  •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사형만큼이나 무서운 형벌 '유배'…고통과 속죄의 마음, 문학으로 이어져

    등잔불 치는 나비 저 죽을 줄 알았으면 어디서 식록지신(食祿之臣) 죄 짓자 하랴마는 대액(大厄)이 당전(當前)하고 눈조차 어두워서 마른 섶을 등에 지고 열화(烈火)에 듦이로다. 재 된들 뉘 탓이며 살 가망 없다마는 일명(一命)을 꾸이오셔 해도(海島)에 내치시니 어와 성은이야 갈수록 망극하다. <중략> 눈물로 밤을 새와 아침에 조반 드니 덜 쓰른 보리밥에 무장떵이 한 종자라. 한술을 떠서 보고 큰 덩이 내어놓고 그도 저도 아조 없어 굶을 적이 간간이라. 여름날 긴긴 날에 배고파 어려웨라. 의복을 돌아보니 한숨이 절로 난다. 남방염천(南方炎天) 찌는 날에 빨지 못한 누비바지 땀이 배고 때가 올라 굴뚝 막은 덕석인가? 덥고 검기 다 바리고 내암새를 어이하리? 어와 내 일이야 가련히도 되었고나. 손잡고 반기는 집 내 아니 가옵더니 등 밀어 내치는 집 구차히 빌어 있어 옥식진찬(玉食珍饌) 어데 가고 맥반염장(麥飯鹽醬) 대하오며 금의화복(錦衣華服) 어데 가고 현순백결(懸百結) 하였는고? 이 몸이 살았는가? 죽어서 귀신인가? 말하니 살았으나 모양은 귀신일다. 한숨 끝에 눈물 나고 눈물 끝에 한숨이라. 도로혀 생각하니 어이없어 웃음 난다. 이 모양이 무슴 일고 미친 사람 되었고나. <중략> 어제는 옳던 일이 오늘이야 왼 줄 아니 뉘우쳐 하는 마음 없다야 하랴마는, 범 물릴 줄 알았으면 깊은 뫼에 들어가며, 떨어질 줄 알았으면 높은 나무에 올랐으랴? 천동(天動)할 줄 알았으면 잠간 누에 올랐으랴? 파선할 줄 알았으면 전세대동(田稅大同) 실었으랴? 실수할 줄 알았으면 내기 장기 벌였으랴? 죄지을 줄 알았으면 공명 탐차 하였으랴? 산진메 수진메와 해동청 보라매가 심수총림(深樹叢林) 숙여

  •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사랑 이야기의 주 메뉴는 상사병과 조력자, 그리고 행복한 결말

    [앞부분의 줄거리] 명나라 효종 때 김생이라는 선비는 길가에서 영영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영영을 만날 궁리를 하던 김생은 영영의 이모인 노파에게 가 자신의 사정을 말한다.노파는 김생보다 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도련님은 그 애를 만나는 것조차 어려울 것입니다.”“그건 무슨 말이요?”“그 애는 회산군(檜山君)의 시녀입니다. 궁중에서 나고 자라 문밖을 나서지 못합니다.” <중략>“영영은 자태가 곱고 음률이나 글에도 능통해 회산군께서 첩으로 삼으려 하신답니다. 다만 그 부인의 투기가 두려워 뜻대로 못할 뿐이랍니다.”김생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였다.“결국 하늘이 나를 죽게 하는구나!”노파는 김생의 병이 깊은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중략>“단오가 한 달이 남았으니 그때 다시 작은 제사상을 벌이고 부인에게 영아를 보내 주십사고 청하면 그리될 수도 있습니다.”김생은 그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할머니 말대로 된다면 인간의 오월 오일은 곧 천상의 칠석이오.”김생과 노파는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영영을 불러낼 계획을 세웠다. <중략>영영을 그리는 마음은 예전보다 두 배나 더 간절하였다. 그러나 청조가 오지 않으니 소식을 전하기 어렵고, 흰기러기는 오래도록 끊기어 편지를 전할 길도 없었다. 끊어진 거문고 줄은 다시 맬 수가 없고 깨어진 거울은 다시 합칠 수가 없으니, 가슴을 졸이며 근심을 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 못 이룬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가운데 부분의 줄거리] 병이 든 김생을 찾아온 친구, 이정자는 김생의 자초지종을 듣고 자신의 고모이기도 한 회산군의 부인을 찾

  •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양반들이 어부(漁父)가 된 이유는?

    석양(夕陽)이 비꼈으니 그만하고 돌아가자돛 내려라 돛 내려라(이하, 후렴구 생략)버들이며 물가의 꽃은 굽이굽이 새롭구나지국총 지국총 어사와(이하, 후렴구 생략)삼공(三公)을 부러워하랴 만사(萬事)를 생각하랴 <춘(春) 6>궂은 비 멎어 가고 시냇물이 맑아 온다낚싯대 둘러메니 깊은 흥(興)을 못 금(禁)하겠다연강(煙江) 첩장(疊)*은 뉘라서 그려낸고 <하(夏) 1>물외(物外)에 조 일이 어부 생애 아니러냐어옹(漁翁)을 ?디 마라 그림마다 그렷더라사시(四時) 흥(興)이 가지나 추강(秋江)이 으뜸이라 <추(秋) 1>물가의 외로운 솔 혼자 어이 씩씩고험한 구름 (恨)치 마라 세상(世上)을 가리운다파랑성(波浪聲)을 싫어 마라 진훤(塵喧)*을 막 난도다 <동(冬) 8>*첩장: 겹겹이 둘러싼 산봉우리. * 진훤: 속세의 시끄러움.윤선도,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물가…시냇물…낚싯대…연강(煙江)…어부 생애…어옹(漁翁)…추강(秋江)…물가…파랑성(波浪聲)조선 문학에 많이 나오는 공간적 배경 중에 하나가 물가, 강, 호수이다. 이 공간들은 자연의 세계를 대표하는 것인데, 그 속에 있는 시적 화자는 자신을 ‘어부’, ‘어옹(漁翁)’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고된 노동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가로운 여유와 유유자적(悠悠自適: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고 마음 편히 삶)을 누리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낚싯대’는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유로운 강태공의 여유를 보여주는 소재다. ‘파랑성(파도 소리)’이 들려오는 ‘연강(안개 자욱한 강)’에서 한가로이 낚시를 하는 모습은 조선 문학에서 흔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