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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초고속 시대에 느리게 살기가 가능할까

    1995년 9월, 미국에서 연쇄 폭발물 테러가 벌어진 뒤 언론사에 익명의 우편물이 날아들었다.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제목의 선언문이었다. 동시에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 주요 정치인 등도 테러 협박 편지를 받았다. 선언문의 서두는 이랬다.“산업혁명의 결과는 인류에게 재앙이었다. 그 덕에 선진국에 살고 있는 우리의 평균 수명은 크게 늘어났지만 사회는 불안정해졌고, 삶은 무의미해졌으며, 인간의 존재는 비천해졌다.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글의 요지는 무분별한 개발과 산업화에 반대하며 이를 막기 위한 세계적인 혁명이 실현된다면 자신의 테러 행위를 끝내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 선언문이 17년간 오리무중이던 테러범의 꼬리를 잡는 계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한 시민이 신문에 실린 글이 자기 형의 문체와 비슷하다고 제보해왔다. 이를 단서로 FBI는 1996년 4월, 북부 몬태나주의 허름한 오두막에서 테러범을 체포했다.그가 ‘유나바머’로 알려진 전직 수학 교수 시어도어 존 카친스키였다. 그가 폭발물을 보낸 곳이 주로 대학교와 항공사여서 언론이 두 단어의 앞 글자(Un+A)에 폭파범(Bomber)을 붙여 지은 별명이다. 그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총 16회의 우편물 폭탄 테러로 사망 3명, 중경상 23명의 피해를 입혔다. 기술 문명을 거부하는 반문명카친스키의 악행도 놀랍지만, 더욱 경악할 만한 것은 그가 엄청난 인텔리라는 점이었다. 1942년 시카고의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카친스키는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다. 고등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하버드대와 미시간대에서 수학 박사학위

  • 시네마노믹스

    내 집 장만의 꿈이 신기루라면 텐트살이는 판타지일까…한계효용의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소의 선택

    2018년 개봉한 ‘소공녀’는 고전 소설 《소공녀(A little Princess)》와 달리 젊은 가사도우미 미소(이솜 분)의 고달픈 삶을 그린 영화다. 몇 푼 안 되는 일당에도 담배 한 갑과 몰트바에서의 위스키 한 잔을 즐기던 미소는 갑작스레 월세와 담뱃값이 오르자 최소한의 짐만 싸서 나와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산다. ‘에쎄’를 500원 더 싼 ‘디스’로 바꾸면서도 담배 또한 놓지 못한다.경제학자 케인스는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소비를 비교하면서 ‘한계소비성향’이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한계소비성향이란 추가로 발생한 소득 중 소비되는 금액의 비중을 뜻한다. 저소득자일수록 한계소비성향이 크다고 케인스는 정의한다. 늘어나는 소득이 생필품이나 식음료를 사는 데 곧장 지출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고소득자는 증가한 소득의 상당액을 저축하거나 투자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소득이 많은 사람은 자산이 더 빨리 늘어나게 된다. 경제학 법칙 무너뜨린 부동산 폭등그러나 케인스도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케인스는 한계효용에 대해 설명하면서 경제 주체가 소비를 늘리는 요인으로 △자산 증가 △물가 하락 △이자율 감소 △미래 소득 증가 등을 들었다. 이 같은 요인이 맞아떨어질 때 개인이 돈을 더 많이 쓰게 된다는 설명이다. 미소의 삶에는 이들 중 어떤 것도 없다. 집이 없으니 자산이 증가할 일은 없다. 물가는 해마다 오르고 비정규직인 가사도우미 월급도 크게 늘 리 없다. 그래도 미소는 마지막까지 담배 한 개비에 몰트 위스키 한 잔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미소가 ‘현재의 소비’를 택한 건 아등바등 살아봤자 자신의 힘으로 ‘집’이라

  • 시네마노믹스

    월세 오르자…방 빼고 기호품 소비 택한 미소, 아무리 아껴도 집 못사니 '소확행' 택한건 아닐까

    “쌀 좀 남는 거 있어? 집에 쌀이 떨어져서.”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이솜 분)는 젊은 가사도우미다. 몇 푼 안 되는 일당으로 단칸방 월세를 감당하느라 쌀을 사는 것도 빠듯하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는 게 있다. 담배 한 갑과 몰트바에서의 위스키 한 잔이다. 멋 없는 새치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 따로 약도 지어 먹는다. 거기에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분)만 있으면 세상은 살 만하다. 그러나 갑작스레 월세와 담뱃값이 오르면서 그동안의 삶이 틀어지고 만다. 가격 올려도 기호품은 포기 못해2018년 개봉한 ‘소공녀’는 고전 소설 《소공녀(A little Princess)》와 이름이 같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microhabitat’(미소 서식지·미생물 등이 사는 환경). 집 대신 자신만의 작은 ‘취향’을 선택한 청년 미소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쥐꼬리 월급으로 월세와 담배, 위스키값을 모두 감당할 수 없게 된 미소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다. 최소한의 짐만 싸서 집을 뛰쳐 나온다. 대신 과거 밴드를 함께했던 친한 친구들의 집에 돌아가며 머무르기로 한다.미소는 왜 ‘유랑민’이 되기를 선택했을까. 갑작스레 물가가 올라서다. 집주인은 월세를 올렸다. 설상가상으로 2500원이던 담뱃값은 하루아침에 4500원이 됐다. 정부가 담배에 붙이는 세금을 높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왜 담배에 붙는 세금을 올렸을까.대부분의 사회에서 흡연은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담배를 피울수록 흡연으로 인한 질환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간접 흡연으로 인한 피해도 많다. 흡연자가 늘어날수록 정부의 건강보험료 등 사회적 지출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특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