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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세계 초일류 자신감 심다…이건희 (1942~2020)

    “미국에 애플이 있다면 한국엔 삼성이 있다.”정보통신기술(ICT)업계에서 애플은 ‘혁신의 아이콘’이다. 애플이 개발한 윈도우형 OS(컴퓨터 운영체제)와 스마트폰 아이폰은 세계적 표준이 됐다. 하지만 한국 기업 삼성은 도전과 혁신으로 수많은 1등 제품을 만들어내며 세계 ICT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스마트폰은 삼성전자가 지난 8월 기준 세계 시장 점유율 22%로 애플(12%)과 격차를 벌리며 세계 1위를 고수했다. 반도체, OLED 등 디스플레이, 리튬이온전지 등 배터리 등도 삼성이 만든 세계 1위 제품이다. 삼성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를 도모하는 기업으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고 한국인의 자존심을 높여주고 있다.이런 초일류 기업을 일군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 25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그의 타계 소식에 세계는 경영계의 큰 별이 졌다며 애도했다.이 회장은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1987년 삼성 회장직에 올랐다. 섬유·화학·무역·금융이 주력이고 전자제품은 TV 정도 제조하던 삼성을 ICT 위주로 재편하면서 1987년 10조원을 밑돌던 그룹의 매출 규모를 2018년 387조원으로 키웠다. 창업주를 보좌하던 그가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시작한 반도체사업은 오늘날 삼성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6분의 1 비중을 담당하도록 하는 초석이 됐다.그는 1993년 ‘신경영’을 내세우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는 말로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주도했다. 1명의 인재가 10만 명을 먹여살린다는 ‘인재경영’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디자인경영도 이끌었다. 언제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새로운 사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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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매출 10조→387조…애플도 떨게 한 '경영 거인'

    지구 역사에 다섯 번의 대멸종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사이 지구상에 살던 생물의 99%가 멸종하고 1%만 생존했다고 한다. 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고 변이한 종은 살아남았다. 적응, 변이, 생존. 이것은 생태계에만 적용되는 메커니즘이 아니다. 기업도 그렇다. 한 기업이 생겨나고, 적응하고, 변이하는 과정도 거의 마찬가지다. 환경 변화에 늦고, 적응하지 못하고, 변이하지 않으면 기업 생태계에서 사라졌다. 한 개 기업엔 잔인할지 모르지만, 기업 생태계 전체 관점에선 건강한 과정이다. 삼성은 ‘자연선택론’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예다.고(故) 이건희 회장이 취임했던 1987년 삼성은 오늘의 삼성과 너무도 달랐다. 지구적 기업 생태계에서 삼성은 하찮은 존재였다. 먹이사슬의 밑바닥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달 20일 발표된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삼성의 순위는 먹이사슬의 꼭대기로 수직상승했음을 보여준다. 5위다. 삼성보다 앞서 있는 브랜드는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뿐이다. 삼성그룹의 30년 성장 역사를 보여주는 수치를 좀 더 나열해보자. (1)매출: 1987년 9조9000억원, 2018년 387조원 (2)영업이익: 1987년 2000억원, 2018년 72조원 (3)주식시장 시가총액: 1987년 1조원, 2018년 396조원 (4)인력: 1987년 10만 명, 2018년 52만 명. 매출은 39배, 영업이익은 360배, 시가총액은 396배, 인력은 5.2배로 늘었다. 30년, 한 세대 만에 이룬 경이적 성장이며 애플도 경계하는 성장이다.기업 생태계는 자연보다 더 혹독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졸면 죽는 곳이 기업 생태계다. 방심하면 바로 누군가가 추격해 들어와선 시장을 빼앗아 가고 만다.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 카메라에 넘어가고,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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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재 확보·전화기 화형식…삼성 퀀텀점프 이끌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일생은 도전과 혁신의 연속이었다. 모두가 말렸던 반도체 사업을 시작해 세계 1위로 키워냈고, 일본에 뒤처졌던 TV와 스마트폰에서는 추종을 불허할 만큼 격차를 벌렸다. 이 회장은 중요한 순간마다 남다른 통찰력으로 결단하고, 고비 때마다 특유의 경영철학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변화와 혁신이 회장의 혁신 방식은 “자신의 처지를 알고, 의식부터 바꾸자”는 데서 출발한다. 사업이나 구조로 혁신을 시작한 게 아니라 의식의 근원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한다. 삼성은 1993년 8월 전격적으로 ‘7·4제’를 시행했다. 오전 7시 출근하고 오후 4시 퇴근하는 이 제도가 시행되자 임직원들은 이 회장의 개혁 철학을 체감하게 됐다.‘품질경영’은 이 회장의 또 다른 화두였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직후 이 회장은 “질(質)로 가서 점유율이 떨어지고 적자가 나도 좋다. 적자가 나면 내 사재라도 털겠다”며 열변을 토했다. 1994년 삼성전자 무선전화기사업부는 제품 출시를 서두르다 불량률이 11.8%까지 치솟았다. 그는 수거된 15만 대의 전화기를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불태우는 화형식으로 경각심을 일깨우기도 했다.복합화, 정보화, 국제화도 줄기차게 역설했다. 이 회장은 “100층이든 80층이든 빌딩에 기획, 디자인, 설계, 판매 등 각 조직 담당자가 모두 입주해 있다면 필요할 때 40초면 회의실에 모일 수 있다”며 빌딩 복합화의 예를 들었다. 삼성이 수원, 화성, 아산 등에 공장과 연구시설, 병원, 학교 등을 갖춘 대단위 복합단지를 구축한 것은 제품 개발부터 양산까지 한 번에 해결하는 ‘스피드 경영’으로 나타났다.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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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폰' 회로기판에 새겨진 '할 수 있다는 믿음'

    ‘할 수 있다는 믿음’.1998년 10월 출시된 삼성전자의 최초 폴더형 휴대폰 ‘SCH-800’ 회로기판에 새겨진 문구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시절, 위기를 극복하고 초일류로 성장하겠다는 삼성전자 직원들의 꿈이 담겼다. 1990년대 초 이건희 삼성 회장은 “향후 한 명당 한 대의 무선 단말기를 갖는 시대가 온다”며 무선전화기 개발주기를 앞당기라는 특명을 내렸다. 이 회장은 직접 휴대폰 디자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등 휴대폰에 공을 들였다. 1994년 이 회장의 아이디어가 담긴 애니콜 브랜드 휴대폰 ‘SH-770’은 가장 많이 사용하는 통화와 종료버튼을 키패드 맨 위에 놓도록 고안해 모든 업체가 따라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양산에 치중하느라 불량률이 11.8%에 이르자 1995년 3월 수거된 휴대폰 5만여 대를 불태우는 화형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당시 국내 4위였던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이듬해 모토로라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애니콜 신화의 시작이었다.이후 ‘이건희 폰’으로 불리며 2002년 출시된 ‘SGH-T100’과 ‘SCH-X430’은 당시로선 최고 스펙인 31만 화소의 내장 카메라와 동영상 촬영기능, ‘클램셸’(조개) 디자인 등으로 호평을 받아 불과 2년 만에 세계 1000만 대 이상 판매되는 성공을 거뒀다.2010년 등장한 ‘갤럭시S’ 역시 ‘이건희 폰’이라는 수식어를 얻을 정도로 이건희 회장의 꿈과 열정이 담겼다. 터치로 화면 입력을 인식하면서 LCD보다 훨씬 밝고 화사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화면을 최초로 채택하는 등 애플의 아이폰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갤럭시S는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세계 시장 1위를 굳건히 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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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침 심한 기업 생태계…꿈을 꾸는 기업만 번창한다

    1700년대부터 400여 년간 명문기업들의 태동부터 소멸까지를 다룬 책 《세계 명문기업들의 흥망성쇠》에서 저자인 래리 슈웨이카트와 린 피어스 도티는 ‘역사 속 모든 기업은 꿈을 꿀 때 번창했고, 현상 유지를 하려 할 때부터 쪼그라들기 시작했다’고 결론 짓고 있다. “로마는 번영의 정점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말과 함의가 맞닿는 말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기업의 변천사는 시대의 변천과 궤를 같이한다. 삼성과 LG만 60년대부터 10위권 유지1960년대 동명목재는 ‘취업하고 싶은 기업’ 1위에 꼽히는 한국의 간판 기업이었다. 3년 연속 ‘수출최고상’을 받을 정도로 경제에 기여가 컸다. 1964년 수출 1억달러 달성을 기념해 제정된 ‘수출의 날’에 수상한 업체는 7곳이다. 동명목재 천우사 성창기업은 합판수출, 삼호무역 판본무역 삼성물산은 섬유, 영풍상사는 아연 등 광산물을 수출하는 기업이었다. 목재 아연 등 원자재와 섬유 등 경공업이 우리 경제를 떠받치던 시절이었다.자산 기준으로 1960년 당시 10대 그룹에 들었던 기업 가운데 현재까지 10위권에 머물러 있는 곳은 삼성과 LG뿐이다. 대한전선 대동공업 등은 존속하고 있지만 순위가 급락했고 삼호 개풍 동양 극동해운 등은 문을 닫거나 다른 곳에 인수합병됐다. 일제강점기 무역업에서 시작한 삼성은 1953년 설탕공장인 제일제당, 1954년 섬유업체인 제일모직 설립으로 재계 1위에 올라섰지만 1970~1980년대에는 현대 LG 대우 등에 밀려 4위권에 그치기도 했다. 그러나 1969년 TV 생산을 위해 설립한 삼성전자가 1983년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글로벌 기업으로서 위상을